차라리, 성공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막 퍼줘 ‘인기쟁이’로 살아남자

요즈음 내 푸념은 방송에서 듣는 유일한 미래가 ‘일기예보’밖에 없다는 거야. 이미 오래된 일이지. 국가의 잉여 에너지를 모두 과거에 쏟아붓고 미래를 위한 혁신을 잊을 때 당연히 국가의 미래도 없어. 제도 혁신 없는 국가는 성장이 없고, 기술 혁신 없는 회사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야.
우리는 가끔 "‘개혁(改革)’한다. 혹은 ‘혁신(革新)’한다"라는 말을 자주 해. 뜻이 헷갈리지? 개혁은 합법적, 점진적 의미가 많고 혁신은 혁명적, 근본적 의미가 커. 두 단어 모두 가죽 ‘혁(革)’ 자를 써. 생살을 찢어 가죽을 벗기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거지.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 개혁이 드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민주주의 역설이기도 하고. 정치가는 미래의 쓴소리보다 현실의 고달픈 소리가 먼저야. 미래의 쓴소리는 소수지만, 현실의 애달픈 소리는 다수라 외면했다가는 큰일 나. 그러니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자고 호소하기보다는 "먹고 죽자"라는 애원에 타협하지.
위대한 패배자 고르바초프의 퇴임사야.
“개혁이란 파충류 껍질처럼 단단한 국가, 당, 경제체제의 극심한 저항을 이겨내야 할 뿐 아니라 우리들의 습관, 이데올로기적 선입견, 독선과 아집, 그리고 무사 안일한 생활 태도와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가 혁신을 바라보는 지도자의 고민이 있어. “차라리, 성공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막 퍼줘 ‘인기쟁이’로 살아남자” 야.
국가의 개혁을 알면서 방치하는 이유가 또 있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언어에 매몰되는 거. 무엇을 개혁하고자 하면 “가진 자를 위해, 기득권을 위해, 대기업을 위해 또 힘없고 빽 없는 가난한 백성만 죽인다.”라고 한마디 던지면 그만 개혁의 꿈이 와르르 무너져. 가진 자 탓은 공산주의자가 하는 말이고, 기득권 탓은 포퓰리스트가 하는 말이고, 대기업 탓은 반기업주의자들이 하는 말이야.
요즈음 기술 혁신에 천재들이 골방에서 뚝딱 만든 발명품은 하나도 없어?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도 없고,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도 없고,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도 없어. 모두 어디로 사라졌지? 기업이나 국가 연구소, 벤처기업의 개발실에 있는 거야.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이 커다란 도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백, 수천 명이 만들어낸 작은 걸음이 모여 성큼 걷는 듯이 보일 뿐이야.
미국만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기술 혁신을 만든 거 잘 알지. 왜 그럴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IT(정보통신기술)의 내재적 가치를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 그들이거든. 자본이 없어서 혁신을 못 한 것도 아니야, 시장이 없다고 혁신을 못 한 것도 아니야. 플랫폼 설계 역량. 수천 명의 희망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 그것이 없어서 그래. 정말 예술이지.
번데기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보호하던 고치를 갉아 구멍을 만들고 힘겹게 빠져나와야 해. 그때 인간이 애처롭다고 고치를 잘라주면 번데기는 날지 못해. 번데기가 구멍을 내기 위해 발버둥 칠 때 허물은 벗겨지고 나비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거야. 혁신도 그래. 누가 위대한 개혁 군주가 되어 납폐에 올라 천하를 호령했으면 좋겠어. 우리도 해방 이후에 욕 많이 먹고 잘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