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조의 낭만] 바다와 석양과 여인의 노래가 소주를 초대했기에 내가 같이 동석한 것 뿐

서산 바닷가에 가면 식당에서 내놓는 어리굴젓이 참 맛있다. 태안반도에는 서산 태안 당진이라는 지는 별들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이 있어 술꾼들을 유혹한다. 천리포 만리포 몽산포 꽃지라는 해수욕장이 있고 수목원도 있다.
내가 소주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석양과 여인의 노래가 소주를 초대했기에 내가 같이 동석한 것 뿐이다. 겨울바다의 유혹에 내가 졌을 뿐이다.
조미미 가수가 부른 '서산 갯마을' 노래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다. 노래 가운데 "요놈의 풍랑은" 이라는 가사 의미가 심상치않다.
조미미 가수는 전남 영광 백수해안 바닷가에서 1947년 태어나 1965년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1965년 지금은 사라진 동아방송 주최로 열려,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출연자에게 바로 가수회원증을 발급 수여해주는 음악 콩쿠르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고교 3년생 조미미가 2등을 먹었다. 1등은 김부자 3등은 김세레나 였다.
조미미가 '물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안 레코드사에서 조미미를 2000만원 부모에게 드리고 입도선매해서 다른 레코드 회사가 모르게 서울로 빼돌렸다. 아지트 같은 서울 회사 숙소에 합숙시키고 노래를 부르게 해 얼굴없는 가수로 데뷔시켰다.
TV는 언감생심인 시절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PD가 왕 노릇을 했던 때다. 이때 터져 히트한 조미미의 노래가 "바다가 육지라면"과 "서산 갯마을" 등이다.
조미미는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등 가수로서는 상당히 성공했으나 돈 방석에 앉아보지는 못했다. 조미미는 성품도 방정하고 얼굴도 반듯해 남성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남진 나훈아 라이벌 경쟁 싸움에 스캔들 인물로 가공되어 끼이는 등 여자로서의 일생은 평탄치 않았다. 남진과 베트남에 장병 위문가서 어쨌다나 저쨌다나.
재일동포와 결혼하고 가요무대 등에 간간이 나와 노래를 불러줬으나 나이 60이 못 되어 술도 못먹는 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래 소질 유전은 지독하다. 조카가 뛰어난 노래 소질을 보여 내가 광주광역시 문화예술과장 시절 발굴해 노래 데뷰 취입시킨 적이 있다.
어리굴젓은 태안반도에서 조금 떨어진 간월도 것을 최고로 친다. 어리굴젓 때문에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조미미 가수가 추억 소환되었다. '어리'라는 말은, "좀 모자란" "덜 떨어진 " "부족한"이란 뜻을 담고있는 접두어이다. "얼간이" 라는 말이나, "어리버리하다" 란 말은 "부족한" 이란 뜻의 "어리" 여기에서 나왔다. "어린 놈이 까불어" 할 때, '어리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뭣인가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다. 익을 때까지 좀 기다리라는 뜻도 있다.
예전에는 소금이 참 귀했나보다. 소금이 제대로 들어가야 젓 맛이 깊어지는데, 바닷가에서 따온 굴(일명 바위사이에 핀 꽃 이라는 뜻으로 석화로 불림)에 소금과 고추가루를 듬뿍 넣지 못하고 시늉만 살짝 해서 담근 굴젓을 "어리굴젓"이라 불렀다.
굴 젓에 양념을 덜 넣으니 삭으면 오히려 굴 본연의 맛이 더 나고 하얀 밥과 잘 어울린다. 산다는 것은 '어리굴젓'처럼 익어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