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서있을 힘이 없었다

가수 최진희 앨범에서. 본 글 내용과는 무관 
가수 최진희 앨범에서. 본 글 내용과는 무관 

25년전 가을, 완도의 소안도로 1박2일 놀러갔었다. 한창 고스톱이 극성을 부릴 때였다. 나는 섬이 그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하면 몇천만 원이었다. 우리 공무원은 고스톱이 점당 천원인데 섬사나이 그분들은 점당 5천원이었다.

밤이 깊어지니 김씨 수산 사장님은 바다에 쳐논 그물을 건져왔다. 병치 집안 대장인 덕자, 그리고 돔 병어 게 등이 걸려있었다. 큼직한 덕자를 꺼내 썰어 마시는 소주에 "고 고 고"를 외쳤다. 쓰리고에 피박 광박 멍텅구리까지 136점! 황금어장이 따로 없었다.

아침 전복 내장을 위주로 차린 식사는 바다의 진한 맛을 안겨주었다. 돔을 잘 손질한 매운탕에 숫게를 넣어 끓인 매운탕맛은 아득한 세월너머 지금도 혀에 삼삼하다.

나가는 배시간에 쫓겨 집을 나서려 하니 박 여인은 묵직한 박스 하나씩을 건네준다.

"자연산 전복 귀한 것이니 아껴서 드십시요. 고시 과목에 고스톱도 있어요? 완전히 타짜 더구만."

나와 동갑내기로서 세살이나 어린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는 박 여인은 나와는 갑장이라고 그런지 나를 별나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배 난간에서 박 계장은 해설해주었다.

"서울에서 오믄 일인당 60만원 이랍니다. 1박2일 전복이랑 회 실컷먹고 전복 선물로 싸가고. 우리는 애잔한 공무원들이라고 반값으로 해줬닥 안하요."

그로부터 일 년후 광주 시청 옥상에서 박 계장을 만났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 날이었다.

"박 계장 우리 언제 날 받아서 소안도 한번 갑시다."

"안돼요. 틀렸어요. 내가 이야기 안했구만요."

그러면서 참 슬프고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 사장은 박 계장과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 친구였다. 소안에서 자란 박 계장은 목포로 고교를 진학한 뒤 공무원이 되었고 김 사장은 소안을 떠난 적이 없었다.

김 사장은 바닷가에 나가 제주에서 전복 등을 체취하러 소안 앞바다까지 오는 해녀들과 노는 것이 큰 취미였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이면 장작불을 피워 물속에서 나온 여인들의 언 몸을 녹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눈이 맞듯 김 사장과 박 여인은 정분이 났다.

열여섯부터 소안 앞바다 자연산 전복을 캔 박 여인은 다른 해녀 7인분 몫을 했다. 소안도를 비롯한 인근 바다의 속내를 샅샅이 꿰고 있었다. 다른 여인들을 대동하고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에서 나올 때마다 광맥을 캐듯 전복을 잡아왔다. 박 여인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바다속 깊은 곳을 누벼 집안을 번영시키는 아마조네스 같은 여인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자식 공부하기 싫다고 나가버린 것빼고는 세상사 무슨 걱정이 있었겠는가.

김사장은 해녀 부인이 전복 등을 잡아오면 바닷물 탑재차에 해산물을 잔뜩 싣고 제주와 부산 서울의 수산물 큰손에 넘겨주고 돈을 받아오는 것이 주 일과였다.

한번 나가 전국을 순회하면 매출액만 3억이 넘었다 한다. 광주는 큰 거래처가 아니어서 부산에서 다시 받아와야 하니 자연산 전복을 광주 사람들은 맛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봄날, 박 여인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큰 돈이 자꾸 비고 부쩍 멋을 내기 시작하는 김 사장이었다. 이럴 때 여자의 직감이 틀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늘도 무심하다.

아무 말도 않고 바다수산 차를 타고 룰루랄라 떠나는 김사장을 미행했다. 부산 해운대 바닷가 고급 아파트 입구에는 김 사장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견우직녀 상봉하듯, 떨어져사는 신혼부부가 오랜만에 만나듯 영화 한장면이었다. 박 여인은 그 길로 돌아서고 말았다.

제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간 김 사장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으나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봄날이었다. 고향 제주를 떠나 어린 시절부터 전복을 따 한 집안을 일으킨 날들이 떠올랐다. 봄날은 가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서있을 힘이 없었다. 전복을 딸 때 쓰던 독일제 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렇게도 억척같고 남자보다도 의리와 배짱이 좋아 온동네 일을 다 보살피던 한 여인은 갔다. 제주의 봄도 소안의 봄도 그렇게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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