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죽음을 너무 찬미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열사’라?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김선래 <최보식의언론>기자

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서 분신한 노조 간부를 열사로 호명한다. 37년간 봐온 풍경이다.

1986~1993년까지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안팎에서 일했다. 간사, 실무자, 교육상담부장 등 직함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987년부터 매년 3월이나 9월에 마석모란공원 참배를 갔다. 그땐 전태일과 박영진 묘소만 있었다. 추모사업회 실무자를 했으니 무슨 분신 사건만 터지면 빠짐없이 빈소를 찾아 문상을 했다. 그때도 괴로웠다.

1989년인가 1990년인가 인민노련 기관지 노동자의 길에 누군가(황광우? 주대환?)"우리는 분신을 반대한다"는 글을 썼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추모사업회 다른 선배들은 그 글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법 살아 보니, 우리 사회의 추모 방식이 죽음을 부르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귀하고, 가치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죽음을 너무 찬미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열사?

이번에 분신한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가 지난 1일 분신할 때 함께 있었던 A씨의 자살 방조 의혹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수사로 가면 당시 장면이 그대로 찍힌 CCTV가 공개될 수 있다.

그날 휘발성 물질을 자신의 몸과 주변에 뿌린 양씨가 라이터를 켜자, 동료 A씨는 불붙은 양씨를 뒤로 하고 걸어나오면서 휴대폰을 만지고 통화하더라는 것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매우 이상한 행동이었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YTN 기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소화기를 찾으러 뛰어가는 장면과 대조된다.

이를 단독보도한 조선일보 기자가 A씨에게 양회동씨가 분신할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묻기 위해 전화를 걸자, A씨는 호칭을 먼저 양회동 열사라고 해야 답변하든지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세력이 '열사'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왔다. 1990년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사건 직후 전국에서 학생 노동자 등 열댓명의 '열사'들이 생겨놨다. 당시 김지하는 “당장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썼다가, 자신의 진영으로부터 '왕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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