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그를 떠받들고 추종한 재야운동권은 등을 돌렸고,

우파 진영은 대선국면에서 그를 활용해 먹을 줄만 알았지

그를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김지하 시인
김지하 시인

장례식의 거창함을 따지는 것은 속물(俗物)의 시각이겠지만, 그럼에도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뭔가 씁쓸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진행될 것 같다.

3년 전 김지하의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이사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그 상가의 썰렁한 풍경을 잊지 못한다.

지방이라 길이 멀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지하에게 ‘세력’이 없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이 무슨 세력 타령을 하겠느냐마는.

한 시절 지식인과 대학생 그룹은 ‘김지하’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의 ‘이름’ 자체가 어둠 속 등대와 같았다. 판금(販禁)된 그의 시집을 몰래 돌려읽거나 등사기로 밀은 시 몇 편을 나눠읽었다.

그런 김지하가 노태우 정권 시절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자살 등 죽음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목적을 수단을 가리지 않는 운동권의 도덕성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했을까. 그 글이 아니었으면 ‘죽음의 굿판’ 풍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을까.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재야운동권의 ‘우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뤄 셀 수 없는 추종자들의 떠받듦을 계속 누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저항 시인’의 생각은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는 제 18대선에서는 “여성성(女性性)이 세상을 구한다. 지도자가 나와 세상을 다스려야 할 시기”라며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 뒤로 그는 재야운동권 진영으로부터 ‘배신자’라며 완전히 배척당했다. ‘지하 형’이라며 그를 따르던 후배들이 돌변해 그를 대놓고 “개XX”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인간이 자기가 속했던 ‘진영’으로부터 따돌림받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 시절 그를 떠받들고 추종한 재야운동권은 등을 돌렸고, 우파 진영은 대선국면에서 그를 활용해 먹을 줄만 알았지 그를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이제 어느 쪽도 그의 부음에 별로 반응이 없다. 다만 젊은 날 그와 함께 했던 70대 후반, 80대 초반 인사들만이 안타까워할 뿐이다.

김지하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가. 며칠 전 강수연 별세 소식이 들리자마자 영화인들은 나서서 영화인장(葬)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지하의 부음에는 나서는 문인단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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