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전쟁은 점령이 아니라 위험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동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예멘 후티 반군의 전면 가세로 중동 전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안사르 알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헤즈볼라 및 친이란 민병대와의 공조까지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저항의 축’이 동시 작동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아라비아해로 향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미 봉쇄 직전의 긴장 상태에 놓였고,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위협받고 있다. 두 개의 해상 동맥이 동시에 흔들리는 순간,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균열될 수 있다.
지금 국제유가는 더 이상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은 숫자를 계산하지 않는다. 공포를 가격에 반영한다. 유가 150달러는 과장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 도달하는 현실적 기준선이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가격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진입하는 구조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산유량이 아니라 ‘수송 불확실성’이다. 후티는 해협을 완전히 막을 필요가 없다. 단 한 번의 타격이면 충분하다. 그 순간 보험이 멈추고, 항로가 멈춘다. 현대의 전쟁은 점령이 아니라 위험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군사적 봉쇄가 아니라 경제적 봉쇄다.
전례가 있었다. 2023년 이후 후티의 공격이 이어지자 글로벌 해운사들은 홍해 항로를 포기하고 희망봉으로 우회했다. 해협은 열려 있었지만, 시장은 그것을 닫힌 것으로 간주했다. 이것이 비대칭 전쟁의 본질이다. 몇 척을 타격해 전체 흐름을 멈추는 구조다. 지금 중동에서 작동하는 것은 바로 이 메커니즘이다.
이 충격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초기에는 운임 상승과 항로 우회가 나타난다. 다음 단계에서는 보험 시장이 흔들리며 항로 자체가 마비된다. 그리고 고강도 국면에 들어가면 이란의 직접 개입과 북부 전선이 결합되면서 중동 전체가 하나의 전장으로 통합된다. 그 순간, 에너지 문제는 금융과 산업 위기로 전이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총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이번 충격은 단순한 비용 상승으로 끝나지 않는다. 환율이 먼저 흔들리고, 수입물가가 뒤따르며,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위축된다. 기업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은 이를 먼저 반영한다. 이미 원화와 증시는 경고를 보냈다.
지금은 시작일 뿐, 정점이 아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유가 상한 조정, 국채 바이백, 시장안정 조치, 비축유 활용 검토 등 초기 대응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동 전선 확대와 공급 차질 장기화 가능성을 감안하면, 이 수준의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전시형 경제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장 실행해야 할 7가지 대응 방책을 제시한다.
첫째, 에너지 비상대응을 24시간 체제로 격상해야 한다.
핵심은 유가 자체보다도 공급 차질의 지속성이다. 정부는 합동 비상상황실을 상시 가동하고, 원유·LNG·석유제품 재고를 매일 점검해야 한다. 이미 정부가 공동비축 원유 활용과 발전 연료 운영 조정에 나선 만큼, 이를 단기 대책이 아니라 전시형 공급관리 체제로 바꿔야 한다. 특히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가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을 전제로 시나리오별 대응표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비축유 방출과 도입선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비축유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즉효약이지만, 장기전에서는 새로운 조달선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언급한 2천만 배럴 공동비축 활용은 초기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카타르산 가스나 중동 원유 비중이 높은 구조 자체를 그대로 두면 충격은 반복된다. 미국, 서아프리카, 동남아, 호주 등 대체 조달선을 확대하고, 장기 LNG 계약의 유연 조항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셋째, 환율 방어를 통화, 재정, 시장조치가 함께 가는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최근 원화가 달러당 1,517.3원까지 밀린 것은 단순한 심리 악화가 아니라, 한국이 에너지 충격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외환당국 단독 개입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채시장 유동성 공급, 외환 유동성 점검, 필요시 달러 조달 창구 확대, 금융회사 익스포저 관리까지 한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이미 5조 원 규모 국채 바이백과 시장안정 조치에 나선 것은 맞지만, 지금은 필요하면 더 크게 하겠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넷째, 서민 보호는 넓고 얕게가 아니라 좁고 두껍게 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와 가격상한은 체감 효과가 있지만, 오래 끌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왜곡도 생긴다. 따라서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지원보다 운송업, 영세 자영업, 어업, 농축산업, 저소득층의 난방비나 교통비처럼 에너지 급등에 직접 노출된 계층에 집중 지원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OECD도 이번 전쟁발 에너지 충격이 성장률을 깎고 물가를 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 만큼, 재정은 경기부양보다 충격 흡수에 정확히 맞춰 써야 한다.
다섯째, 산업별 비상 매뉴얼을 즉시 가동해야 한다.
한국은 정유만 보는 나라가 아니라, 반도체, 화학, 철강, 해운, 항공, 자동차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제조와 수출 경제다. 유가 급등은 단순 연료비 상승이 아니라 전력비, 물류비, 원재료비, 보험료 상승으로 연쇄 파급된다.
따라서 산업부와 각 업종별 협회가 운송 물량 및 우회 항로 확보, 재고 비축, 긴급 수입선 변경, 비용을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범위까지 포함한 행동계획을 바로 점검해야 한다. 한국 증시가 전쟁 충격에 크게 흔들렸던 것도 이 구조적 취약성을 시장이 먼저 반영한 결과다.
여섯째, 한국은행과의 공조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내야 한다.
중동 전쟁발 충격은 전형적인 공급 충격이라 금리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는 물가를 걱정하고, 중앙은행은 경기만 본다”는 식의 엇갈린 메시지에 가장 민감하다. 한국은행은 이미 물가 경로가 국제유가와 환율에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해 왔고, 정부 역시 유가 급등을 경제 전반의 리스크로 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금리 방향을 섣불리 단정하기보다, 물가·환율·금융안정을 함께 보겠다는 공동 메시지가 필요하다.
일곱째, 대통령이 직접 ‘국민 설명’을 해야 한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불확실성이다. 후티가 홍해를 다시 흔들 가능성,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 장기화, 유가 150달러 시나리오, 원화 약세, 물가 상승이 한꺼번에 겹치면 시장과 국민은 불안한 반응을 보인다.
이때 정부가 숫자와 계획을 갖고 설명하면 불안은 줄고, 반대로 원론적 발언만 반복하면 시장은 더 세게 흔들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현재 비축 수준, 공급 계획, 취약계층 지원, 금융시장 안정수단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강한 안정책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 조치들도 대통령 주재 긴급회의를 통해 발표됐다.
결론은 간단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찰이 아니라 결단이다. 유류세를 조금 깎고 시장안정자금을 조금 푸는 수준의 부분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에너지, 환율, 채권, 주식, 물가, 산업을 한꺼번에 보고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이미 시장은 원화와 주가를 통해 경고를 보냈고,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을 함께 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지금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충격은 환율에서 끝나지 않고 실물경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정부가 속도와 정교함으로 대응해야 한다.
jeongkee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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