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유도 vs 소비 촉진
[최보식의언론=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 지역장 전무]

'석유 최고가격제'를 내놓았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는 "에너지 절약 노력의 범사회적 확산을 위해 자동차 5부제 또는 10부제 등 다각도 수요 절감 대책을 조기에 수립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23일 오전 8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19.55원이다. (편집자)
대통령은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가격이 폭등하자 대비 차원에서 차량 5·10부제 시행 등 비상 대응을 주문했다. 민간을 포함한 차량 운행 제한제가 현실화되면 걸프전쟁으로 두 달간 10부제가 시행됐던 1991년 이후 처음이 된다.
에너지 비상시국에 차량운행 제한제의 실시는 불편하긴 해도 에너지소비를 줄이자는 취지이니 바람직한 정책이다.
그런데 차량 운행 제한제는 얼마 전에 시작한 '휘발유 가격상한제(Price Ceiling)'와는 서로 충돌된다. 휘발유 가격상한제는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자는 선의에서 출발하지만 휘발유 사용을 촉진하니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차량 운행 제한제와 너무 상충되어 이율배반적이다.
차량운행 제한제는 분명 휘발유 수요를 제한하는 정책이고 휘발류 가격상한제는 휘발류와 경유가격을 인위적으로 눌러놔 차량운행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니 서로 상반되는 정책이라 헷갈리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데 휘발유 가격상한제는 시장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모두가 알다시피 중동전쟁의 여파로 국제원유의 공급이 부족하고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법칙으로는 정유사의 공급물량이 줄어드니 가격이 올라가고 주유소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올린다.
소비자는 연료 가격부담에 승용차 운행을 줄이거나 승용차들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휘발유 수요가 줄어드니 휘발유 가격은 고공행진을 멈추고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것이 수요공급원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자유시장 경제원칙이다. 그런데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 소비자는 더 많이 소비하려 하지만, 정유사나 주유소는 수익성이 낮아져 공급량을 줄이게 된다. 시장에서 물량 부족(Shortage) 현상이 나타나며, 가격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름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시장에 왜곡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가격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가격이 올라야 소비자가 절약을 실천하고 대체 에너지를 찾는데, 가격상한제가 그럴 필요를 없애주니 불필요한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한다.
높은 에너지 가격은 정유사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서 더 많은 기름을 더 싼 가격으로 확보하게 만든다. 이것이 자본주의 속성이다. 그런데 정부 지침에 의해 가격을 묶어 두고 정부가 그 차액을 알아서 물어주면 정유사는 굳이 죽어라 노력해서 싼 가격에 많은 물량을 확보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다. 노력을 안 해도 이익이 확보되니 가만히 앉아 노는 사회주의 마인드가 생기는 것이다.
정부정책의 의도가 선하더라도 시장에서의 결과는 의도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정부 지침에 의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가격을 싸게 책정해도 주유소에 공급이 원활치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 소비자들은 휘발유가 있는 주유소를 찾아 헤매야 하고 혹시 있더라도 줄을 길게 서야 하는 유류대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비싼 가격에라도 휘발유를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니 블랙마켓이 형성된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며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심도 있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대통령이 지시하면 정부의 각료들이 정책이 가져올 영향을 깊이 검토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시행부터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수시로 빨리하라고 압박하니 각료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겠다.
하지만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두가지의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하면 시장경제를 왜곡시키고 국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 혼돈에 빠진다. 당연히 정책의 효과도 반감된다. 정부가 휘발유 가격부담을 낮춰줬으니 승용차를 마음껏 사용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것인지..... 지금이라도 정부의 에너지 정책방향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도무지 헷갈려서 잘 모르겠다.
지금은 중진국 이상이지만 과거 여러 후진국에서 근무할 때 기업이 정부정책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후진국에서 기업 활동하며 힘든 것이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다. 후진국 정부정책의 대표적 특징이 일관성, 예측성, 지속성 부족이다. 정부의 정책이 너무 왔다 갔다하며 일관성이 없으니 기업은 계획을 세우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지난번 발표했던 정책을, 당초 약속을 어기고 수시로 뒤집는다.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없으니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된다.
그중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정부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전혀 예측이 안 되는 것이다. 정부가 아닌 최고권력자 마음대로 정책을 결정하니 전혀 예측이 안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전혀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곤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이 여전히 후진성을 띠고 있다. 정부의 후진성을 측정하는 일관성, 지속성, 예측성 지표에 있어 대한민국의 정부 정책은 어떤 점수를 받을지 스스로 판단해 봐라.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이나 이번 차량 운행제한제와 휘발유 가격상한제 같은 정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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