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인물투성이

[최보식의언론=오광조 마취통증전문의(작가)]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몇 주 전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호상이라 분위기가 어둡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가는 본래 칙칙하다. 상주 옷 색깔도 어둡고 문상객도 중장년층이 많다. 목소리도 낮고 웃음은 작다.

늦은 밤에 갑자기 20대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돌아가신 분 손자의 대학원 실험실 동료란다. 어설프지만 어두운 옷을 챙겨 입었다. 노랑머리도 있었다.

기분일까. 갑자기 가라앉은 상가에 생기가 돌았다. 다른 곳은 겨울인데 그들이 앉은 테이블만 봄이었다.

삶이 죽음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겨울만 계속되는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있는 곳만 봄이 온 것처럼.

요새 걸어서 출근한다. 기름값도 올랐지만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출근 시간, 출근길이 초등학교, 중학교 등굣길과 겹친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닌다. 아이들 뛰는 소리,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짜랑거린다.

천지가 살아있는 느낌으로 떠들썩하다. 세상의 주인은 아이들이라는 매일 느낀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한국은 고인물 투성이다.

그나마 실력이 바로 드러나는 아이돌이나 운동선수는 세대교체가 확실하다.

방송과 정치는 고이고 썩을 지경이다. 수십년째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돌아가면서 우르르 이 프로에 나오고 팀으로 다른 프로에 나오고. 한소리 또 하고 또 하고. 지겹다.

후배에게 자리를 넘기고 적당히 물러나면 좋겠다.

정치인도 당을 옮겨가면서 양지만 쫓는다. 걷기도 위태로와 보이는데 죽는 날까지 정치판을 기웃거린다.

다음 세대가 살 세상은 그들이 만들어가라고 맡기고 비켜줬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우리는 중간주자다. 때가 되면 배턴을 넘기고 물러나야 한다.

미련을 못 버려 머뭇거리면 경기를 망칠 뿐이다. 움켜쥐고 버티면 강제 추방당한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꽃다발을 쥐어 줘야 세상은 이어진다.

'나그네의 꽃다발'

- 서정주

내 어느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여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꺾어 모은 한 옹큼의 꽃다발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 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

내가 못 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 년이나 천오백 년이 지낸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럼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나그네 #세대교체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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