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아버지가 기부한 300억으로 TBS방송국 재단을 설립한 지 10년이 되는 날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2012년 12월 25일 오후. 함박눈이 곧 쏟아질 듯 눅눅한 하늘이었다. 사무실로 50대 중반쯤의 여성이 찾아왔다. 로펌 율촌의 우창록 변호사의 소개로 온 허은정 교수였다. 통통한 얼굴에 콧날이 칼날같이 서 있었다. 성형수술을 한 것 같아 보였다.

"오늘이 아버지가 기부한 300억으로 TBS방송국 재단을 설립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예요. 방송국 주차장 한쪽의 아버지 동상은 새똥이 가득한 채 먼지만 뒤집어 쓰고 계셔요. 아버지 돈은 방송 제작비와 관계자들이 호텔에서 먹고 마시는 데만 낭비되구요."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와 같이 분노하는 분들이 계셔요. 변호사님이 그 모임에 오셔서 같이 들어주시죠."

나는 그 며칠 후 저녁 약속 장소인 한남동의 한 음식점으로 갔다. TBS 재단 전, 현직 이사들이 모여 있었다. 연세대 강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각진 턱에 마른 몸매였다.

"저는 화가 나서 이사를 그만 두었는데요. 방송국 은퇴하는 사람들의 자리나 만들어 주기 위한 재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TBS가 오석민 씨를 바지저고리 이사장으로 만들어 놓고 해 먹고 있는 거죠. 이사장은 재단의 복지 사업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이사장 명함 때문에 TBS 편인 거죠. 도대체 팔십이 넘은 분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석민은 총리가 거론되는 사회명사였다. 이어서 서울대 김 교수가 말했다.

"사실 순진한 허상철 옹을 TBS가 속인 거죠. 만약 하늘에서 허상철 옹이 세상으로 내려오면 TBS의 이한별 국장부터 죽이려고 할걸요."

그가 순간 와인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붉은 액체가 흔들렸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령이 그 자리에 함께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한별 국장, 그 사람은 사람 홀리는 데는 선수예요. 이 국장에게 한번 솔직히 물어봤습니다. 왜 재단을 만들었느냐구. 그랬더니 제작비 고민하지 않고 퇴직하면 여생을 사무국장으로 있고 싶었다고 속을 털어 놓더라구요."

"어이가 없네"라며 탄식이 흘렀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TBS 사장은 재단을 귀찮아하고 이사회는 비전문가가 모여서 불성실하게 운영되어 왔죠."

은은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TBS에서 은퇴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사회복지 전문가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겁니다."

구석에서 침묵하고 있던 전직 이사라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이 재단은 끝났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 동조하는 눈빛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을 하거나 이니면 깨버려야 합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웠다.

"현직 이사인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 변호사였다.

"이사장을 선임하는데 그동안은 만장일치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이사회에서 제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사회를 보던 오석민 이사장이 참석 이사 세 명을 투표하게 해서 연임을 하더라구요. 이사들이 이의를 하면 법관 출신인 걸 내세우면서 말을 막아버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오석민 이사장이 법조계의 대(大)원로라 앞에서 말을 하기 힘든 입장입니다."

결국 오석민과 싸우기 위해 그가 나를 끌어들인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기부 받은 부동산을 어려운 사람을 위한 시설로 만드는 게 기부하신 허상철 옹의 뜻인데 오석민 이사장은 그걸 팔아서 여기저기 돈 나누어주는 쪽을 택하고 싶은 겁니다. 저도 김대중 대통령 때 공동모금의 대표로 일을 해 봐서 압니다. 주인이 없어진 돈은 관리자가 생색을 내고 쓰면 주인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 자리에 있던 대학에서 사회복지과 학장이라는 전직 이사가 말했다.

"기부 문화를 말살시키는 사건들이 터지고 있어요. 부산대에 기부된 거액이 유용된 사건이 터져 소송이 제기됐고 충남대에 평생 번 돈을 기부한 김밥 할머니가 홀대받죠. 건물 지을 때 그 할머니 이름을 넣는다고 약속하고는 슬쩍 빼 버린 겁니다. 이런 짓들은 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니까요. 그분들과 연계해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성토하는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기부자의 딸인 허은정 교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인권변호사로 알려지셨고 복합적인 투쟁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엄 변호사님 의견을 말씀해 주시죠."

가슴이 뛰었다. 거대한 공영방송이라는 성이 앞에 보였다. 그리고 법조계 원로라는 장수가 그 성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내 속에서 본능적인 투쟁욕구가 불같이 일어났다. 나는 그런 일을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다윗같이 물맷돌로 골리앗과 싸움을 하는 게 나의 욕망이었다.

"여기 계신 대형 로펌의 대표께서 저에게 법과 혼합한 다른 투쟁 방법을 문의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공익법인의 이사에 대해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런 이사의 한 사람입니다."

순간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전직 이사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사지만 다 같은 이사가 아니었습니다. 오석민 이사장은 총리 물망에 오른 거물이고 연세도 있으셔서 그분 앞에서는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안건이 있을 때마다 법 논리를 제시하시면서 그건 안 된다고 할 때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손끝으로 상을 탁 쳤다.

"결국 그분 한 사람의 뜻으로 재단이 운영되어 온 겁니다. 그분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쓴 연세대 강 교수가 나를 보고 물었다.

"변호사님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헤쳐 나갈 계획이십니까?"

내가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겉으로는 합법을 가장하지만 저는 이 문제의 본질을 평생 피땀 흘려 번 재산을 기부한 노인을 방송국과 오석민 이사장이 기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독하게 붙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도 판례도 없다면서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없으면 투쟁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면 복안이 어떤 겁니까?"

"저는 법정에 오석민 이사장을 끌어내서 하나하나 따지겠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식당에서 우리끼리 모여 분노하는 것보다 훨씬 파급효과가 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극 받은 오석민 이사장이 조심하며 바로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이겨서 최초의 판례를 만들 겁니다."

내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 계속했다.

"내가 아는 시사 잡지를 통해 기획기사로 나가게 할 겁니다. 소송이 제기되고 언론이 기사를 쓰면 상대방이 거대한 방송국이라 주저하던 다른 언론도 침묵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게 변호사가 할 역할이군요. 그러면 우리들의 역할은 뭘까요?"

얼굴 표정에 힘이 돌아온 강 교수가 물었다.

"여기 계신 전·현직 이사님들은 모두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입니다. 언론과 국회에 대고 내부자 고발을 해 주십시오. 국회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에 나오게 해야 합니다.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그걸 청원서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부자의 딸인 허은정 교수를 보며 말했다.

"가족들은 개인 시위를 해 주십시오. 방송국에 아버지 동상이 있죠? 무용과 교수시니까 그 앞에서 소복을 입고 춤을 추세요. 그런 의지로 함께 할 때 저는 도울 겁니다."

"그러면 모든 지휘는 변호사에게 맡기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하죠"

허은정 교수가 말했다. 회의가 끝났다. 식당을 나왔다. 어두운 밤거리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함박눈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뜨거웠다. 이건 법정 싸움이 아니었다. 오석민 이사장과 한판 붙을 기회를 노려왔다. 3년 전 그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비웃었다. 단지 권위의식으로. 거만하고 교활한 그의 위선의 껍질을 언젠가 한번 벗겨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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