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엄상익은 칠십 평생을 변호사로 살아왔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지금 돌이켜보면, 2013년 봄의 그 전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나는 햇볕이 따뜻한 안국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목련이 등불같이 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저는 로펌 율촌의 대표 우창록 변호사라고 합니다.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

대형 일류 로펌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엄 변호사는 보통 변호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해내는 해결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건 하나를 소개할 테니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나는 보통의 변호사가 아닌가? 나는 무슨 방법이라도 쓰는 해결사인가? 그게 나에 대한 뒷평가인 것 같았다.

"대충 어떤 내용입니까?"

"거대 공영방송의 사기극이죠. 그리고 총리급 사회 명사가 이사장으로 들어앉은 재단의 허구를 밝히는 일입니다. 로펌 입장에서는 맡기가 곤란한 사건이고, 법률적으로도 치밀하게 준비해 놔서 쑤시고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내가 자객이 되어 달라는 얘기였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북에서 내려온 노인이 있었습니다. 죽기 전 공영방송에 수백억을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그걸 제작비로 쓰면서 그들의 잔치판으로 만들었죠.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습니다. 기부한 노인의 따님이 현재 대학교수로 있습니다."

기부한 사람의 피와 땀이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정해주시면 그 따님이 엄 변호사 사무실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싸워볼 만한 사회적 의미가 있었다. 그런 사건은 실패해도 맡곤 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일 게 있습니다."

"뭡니까?"

"그 따님 성격을 엄 변호사가 견딜지 모르겠습니다. 잘해 내시기 바랍니다."

묘한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그 후 나는 거대 공영방송에 시비를 걸었다. 그 위선을 언론을 통해 폭로했다. 총리 물망에 오르던 사회 원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사장의 허위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를 변호사 징계위원회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대한변협회장 출신인 그는 그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결국 그 딸과도 충돌했다. 굳이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다. 로펌 대표가 "잘 견뎌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뒤늦게 알았다.

그 딸은 나를 해임했다. 변호사로서 평생 단 한 번 겪은 치욕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 집안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상철이라는 노인을 잊을 수 없다. 그가 죽기 직전 무엇을 느꼈을까. 평생 모은 돈을 불태우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돈은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한다.

나, 엄상익은 칠십 평생을 변호사로 살아왔다. 이 글은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대한 증언이다. 법정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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