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던 톨스토이
[최보식의언론=강평기 러시아전문가('표트로대제의 개혁' 저자)]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던 톨스토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래 글에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의식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일 가운데 언제나 온전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제 할 일이 없으니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 더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은 처음부터 언제라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 일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그 일은 바로 자기 영혼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입니다.
동물은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다가올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왜 그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할까요?
무엇이 때때로 인간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아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살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무엇을 위해 그런지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성적인 인간이 육체의 삶에서 영혼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옮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삶의 전환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앨 뿐만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을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의 마음처럼 바꿔줍니다.
죽음은 온갖 곤경과 불행으로부터 그토록 쉽게 우리를 해방시켜주기에,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땅히 죽음을 갈망해야 합니다.
새로운 삶을 기다리며 불멸을 믿는 사람들은 더더욱 죽음을 갈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대다수의 사람은 죽음을 원치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정신적인 삶이 아닌 육체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냐고요? 아닙니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거나 죽음을 생각할 때면, 마치 기차가 높은 곳에서 바다로 떨어지거나 열기구가 높이 솟아오를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전율을 느낍니다.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압니다.
자기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수백만의 존재들이 겪어 온 바로 그것이 자기에게도 일어날 뿐이라는 것을.
그는 다만 여행의 방식을 바꿀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죽음의 지점에 가까워질 때 느끼는 떨림만큼은 피할 수 없습니다.
- “나의 영웅,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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