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아는 일
[최보식의언론=강평기 러시아전문가('표트로대제의 개혁' 저자)]

사람들은 흔히 많이 알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는 잘 보지만 햇빛 아래서는 눈이 멀어버립니다. 학식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학술적인 사소한 잡지식은 수없이 알고 있지만, 정작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알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학문은 200~300년 전 교회가 차지하고 있던 것과 똑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공인된 제사장들-지금은 교수들-이 있으며, 공의회와 신성종무원처럼 학문에도 아카데미와 대학, 학회들이 있습니다.
그때와 같은 신뢰, 비판의 부재, 의견의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신봉자들을 흔들지는 않습니다.
그때와 같은 생각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습니다.
그때와 같은 확신에 찬 교만이 있습니다.
그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는 계시와 교회를 부정하는데. 그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는 학문을 부정하는데.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의 거의 전부는, 부유한 사람들의 꾸며낸 것들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들은 오직 그들의 한가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만일 사람이 모든 학문을 알고 모든 언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끝없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왜 살아야 하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뜻으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의로운 삶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잘 아는 글 모르는 노파보다도 훨씬 덜 깨우친 사람입니다.
노파가 학자보다 더 깨우친 사람인 까닭은,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내 삶이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반면 학자는, 삶 속의 가장 복잡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교묘한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반드시 던질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질문, 나는 왜 살아가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 '나의 영웅,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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