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그 차이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율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사진 이병철 시인
사진 이병철 시인

두 아이들과 함께 3박 4일, 짧지만 밀도 높은 가족여행으로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얼어붙은 영하의 서울을 떠나, 불과 7시간 만에 도착한 쿠알라룸푸르는 영상 34도의 짙푸른 여름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겨울의 한복판에서 한여름의 정점으로 건너온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내게 낯선 나라였다. 평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여행지로 정하지 않았더라면 특별한 인연이 닿지 않았을 곳이었다. 사전 정보나 지식 없이 그저 아이들을 따라나선 길이었으나, 공항에서 도심에 이르는 첫인상은 그동안 방문했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도로를 점거한 오토바이 부대나 도시를 뒤덮는 매연과 소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열대의 상록수림과 어우러진 도시는 넓고 쾌적했다. 잘 정비된 시가지 위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롭게 서 있는 풍경은, 여느 동남아 국가와 비슷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나의 편견을 조용히 깨뜨렸다.

동서양 해상 교역로의 요충지인 말라카 해협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 해협이 바로 이곳의 앞바다라는 사실은 이번에야 실감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겪고 1957년에야 독립한 아픈 역사, 그리고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 여전히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세계적인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본래 이 연방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는 사실은 오래된 역사책 속 지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민족 간 격차를 조정하며 사회 안정을 도모하던 과정에서 노선 차이로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떼어내듯 독립시켰던 1965년의 결정. 그것이 모두에게 온전히 옳은 선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분리가 이후 두 나라를 각자의 조건에 맞는 길로 나아가게 했고, 오늘날에는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사이좋은 이웃으로 자리 잡게 했다는 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여전히 분단과 대립의 구조 속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 이들의 ‘분리 이후의 공존’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물음을 던진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깊게 다가온 것은 다양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양성을 관리하고 견뎌내려는 태도였다.

말레이인의 신앙, 중국계의 활력, 인도계의 문화가 세 축을 이루어 서로를 떠받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슬람 모스크 옆에 힌두 사원과 불교 사찰이 나란히 자리한 풍경은 이곳에서는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일상에 가까웠다.

이러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말이 바로 ‘무히바(Muhibbah)’였다.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뜻하는 이 말은, 완성된 이상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유지해야 할 사회적 약속처럼 느껴졌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내게 남은 것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이 연방을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묶고 있는 무히바 정신의 실체였다. 그것은 갈등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려는 집단적 의지에 가까웠다.

그 점에서 이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공존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다.

‘진흙탕이 만나는 강어귀’라는 뜻의 쿠알라룸푸르. 서로 다른 물줄기가 끝내 섞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듯, 수백 년의 시간과 수만 가지의 신념이 이 도시에 겹겹이 쌓여 있다. 그 복잡한 결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 고마운 여정이었다.

쿠알라룸푸르의 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합주였다. 서로 다른 삶들이 겹쳐 울리는 살아 있는 악보 같았다. 클랑강과 곰바크강이 만나 도시의 이름을 이루었듯, 이곳에서는 이슬람의 아잔 소리와 힌두 사원의 향내, 중국계 상점의 분주함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뒤섞여 있었다.

​오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힌두교 동굴 사원인 바투 사원을 찾았다. 272개의 무지개 계단을 올라 힌두 브라만 사제로부터 보호와 축복의 의미를 담은 카라야 매듭을 손목에 묶고, 미간에는 '제3의 눈'이라 불리는 붉은 틸라카를 찍었다. 

오후에는 그 손목의 매듭을 그대로 지닌 채 백색으로 눈부신 모스크에 들어갔다. 히잡을 쓴 이들 곁에 나란히 앉아 코란의 찬송을 들었다. 

이질적인 신성들이 내 몸 위에서 충돌 없이 머무는 그 기묘한 평화는, 편을 가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우리 마음의 습관을 말없이 비추는 거울이었다.

​도교 사원에는 공자와 부처, 관운장이 함께 모셔져 있고, 바로 옆에는 모스크가, 길 건너에는 성당이 이웃해 있다. 히잡을 쓴 여인들이 홍등이 걸린 중국인 상가에서 쇼핑을 즐기는 풍경은 이 도시의 평범한 일상이다. 

이러한 일상을 떠받치는 힘을 이들은 '무히바(Muhibbah)'라 부른다. 무히바는 단순한 관용이나 참을성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그 차이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율하려는 역동적인 태도에 가깝다. 

말레이인, 중국계, 인도계가 각자의 신앙을 고수하면서도 공존을 선택하는 것은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는 법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름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큰 나무가 뻗어낸 서로 다른 가지일 뿐이다.

이 생생한 현장에서 나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좌와 우, 진영과 진영이 서로를 부정하며 날을 세우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세계사적 위기와 문명사적 대전환의 문턱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뿌리임을 잊은 채,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이념이 생명의 존엄보다 앞서고, 진영의 논리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압도하는 순간, 정치는 보호의 장치가 아니라 갈등의 증폭기가 된다. 

'무히바'의 눈으로 보면 좌와 우는 박멸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한 사회를 지탱하는 서로 다른 결의 호흡이다. 

만약 우주의 시작이 하나였다면, 무엇을 내치고 독점하려는 태도는 얼마나 허약한 망상인가.

어째서 우리는 다름을 곧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왜 우리 정치는 헛된 이념에 따른 진영논리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증오를 생산하는가. 어째서 무히바의 정신과 화쟁의 정치세력은 출현하지 못하고, 통합과 화해를 말하는 언어는 늘 공허하게만 들리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정치보다 먼저 우리 마음의 구조를 돌아본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분별심이야말로 우리가 깨뜨려야 할 가장 견고한 이념의 벽이다.

​화해와 공존, 화쟁(和諍)과 상생의 생명정치를 생각한다. 이 땅에 무히바의 정신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도 마음의 밭을 다시 갈아야(耕) 할 때다. 편견의 돌자갈을 골라내고 포용이라는 거름을 더해, 다름을 견디고 품어내는 토양을 일구는 일. 그 느리고도 정직한 작업만이 갈등의 덫을 넘는 가장 현실적인 길임을 말레이시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다시 확인한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기온이 차갑다. 그러나 이 혹한이 마지막 입춘 추위라면 봄 또한 머지 않았다. 이 추위만 지나면 얼어붙은 대지 위로 꽃망울이 터져 나올 것이고, 웅크렸던 꽃눈들도 기지개를 켜며 이 땅에 환한 봄을 열 것이다. 

다가올 봄에는 이 나라의 정치 또한 화쟁과 상생의, 그 무히바의 정치로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마음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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