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저수지와 겨울 철새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사진 이병철
사진 이병철 시인

경남 창원 동읍 들판 한가운데 놓인 주남저수지는 동양 최대 규모의 철새 도래지 중 하나로, 겨울이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숲마루재(필자의 집)에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라, 아침 동이 트기 전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해뜰 무렵 철새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수지 탐조대 가까이 다가가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임에도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수천 마리 새 떼가 비상하는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지만, 내 서툰 솜씨로는 흐릿한 실루엣만을 겨우 담아낼 뿐이었다.

그러나 흐릿하게 찍힌 것은 새가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의 초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이곳에는 천여 마리의 큰고니와 재두루미가 머물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여왕'이라 불리는 큰고니의 우아함과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의 고고함, 그리고 해 질 무렵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까지.

탐조대 인근에서 아침 먹이를 찾는 큰고니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장터에 모인 사람들처럼 북적이는 그 소리에서 주남저수지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낀다. 겨울의 차갑고 적막한 풍경이 철새들의 활기찬 몸짓으로 인해 뜨겁게 살아나고 있었다.

​본래 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저수지는 이제 철새들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저수지의 물은 새들에게 잠자리가 되고, 갈대밭은 쉴 곳이 되며, 주변 들판은 넉넉한 겨울 밥상이 되어준다. 농업용 저수지 그 이상의, 생명의 쉼터로서의 가치가 더 깊어진 셈이다.

사람을 위해 만든 물이, 사람만의 물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철새 도래지는 새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내어줄 수 있는 자리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수만 리 길을 날아와 이곳에 깃든 생명들을 보며, 사람과 동료 생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새삼 그려본다.

시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품어 안는 것뿐이리라. 겨울이 차가울수록 함께 살아 있음의 온기는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주남의 손님들이 봄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편안히 지내다 모두 건강하게 잘 돌아가기를, 그리고 다시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잊지 않고 이곳에 깃들기를 마음 모아 빌어본다.

이 평화로운 동행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그들이 돌아오는 한, 이 땅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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