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가 "그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제동을 걸자, 이들은 또다시 '내정 간섭' 프레임을 꺼내 들 기세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정전(停戰).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췄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이름과 달리 지구상에서 가장 중무장된 병력이 서로의 미간을 겨누고 있는 역설의 공간이다.
그런데 여의도의 시계는 다른 타임존에 맞춰져 있는 모양이다. 그곳을 '평화의 길'이라 부르며 관광객을 위한 둘레길 쯤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또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과 정동영 장관이 추진하는 이른바 'DMZ법'의 논리는 매혹적이다. "우리 땅에 들어가는 문을 왜 외국군 허락을 맡고 여느냐"는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린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주권 마케팅'이다.
하지만 유엔사가 "그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제동을 걸자, 이들은 또다시 '내정 간섭' 프레임을 꺼내 들 기세다.
여기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책임의 외주화'다. 유엔사의 반박문 중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것이다.
"통제권을 부정하면서, 사고 책임은 유엔사에게 지게 만든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동물원 사자 우리 앞에서 한 관람객이 "나는 사자를 가까이서 볼 자유가 있다"며 철창 열쇠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사육사가 위험하다고 말리자, 그는 "이 동물원은 우리 시 세금으로 지은 건데 왜 간섭이냐"며 화를 낸다.
정작 묻고 싶은 건 이것이다. 만약 철창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사자에게 물리거나, 발을 헛디뎌 다치면 그 치료비와 법적 책임은 누가 지는가? 놀랍게도 열쇠를 달라고 한 그분들은 사고가 터지면 사육사의 관리 소홀을 탓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작년 11월, 바로 그 서부전선 DMZ에서 폭발 사고로 육군 하사가 다쳤다. 훈련된 군인에게도 DMZ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생사를 오가는 살얼음판이다. 그런데 그곳에 운동화 신은 민간인을 들여보내겠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안전불감증인가.
국내법(DMZ법)으로 국제조약인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겠다는 발상 또한 '입법 만능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파트 입주민 회의에서 "우리 아파트는 중력을 거부한다"고 의결한다고 해서 사과가 하늘로 솟구치지는 않는다. 국제법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정전 체제를 국회 의사봉으로 깰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주술에 가깝다.
진정한 주권은 국민을 위험한 곳으로 들여보낼 권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격리할 의무에서 나온다. 지뢰밭에 돗자리를 펴는 것을 평화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운이 좋기만을 바라는 무모한 도박일 뿐이다. 유엔사가 지키고 있는 것은 미군의 기득권이 아니라, '지뢰를 밟지 않을 당신의 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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