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전략적 수렴은 중국을 구조적으로 압박하는 효과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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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6회 세계경제포럼(WEF)의 한 장면은 겉보기에는 조용했지만, 그 정치적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출범과 동시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초청했고, 푸틴이 이를 수락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지난 수년간 교착상태에 놓였던 미·러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평화위원회는 기존 유엔 체제와 병행하는 새로운 중재기구로 설계되었다. 유럽 주요국들은 이 기구가 유엔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지만, 트럼프는 유엔 안보리 승인을 받아 위원회를 공식화했고, 회원국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하는 대신 출범 첫 해에 한해 10억 달러를 납부하면 영구 이사국 지위를 부여하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이 조건을 푸틴이 받아들였다는 점은 그 자체로 중대한 전략적 선택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공식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결단이 내려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푸틴이 서방이 동결 중인 러시아 국유자산을 회원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한 정치적 교환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푸틴의 전통적 외교 스타일에 비추어볼 때 이례적일 정도로 민첩하고 적극적인 행보다.

푸틴은 원래 초청에 쉽게 응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특히 서방이 주도하는 다자 틀에서는 참여 여부를 오래 저울질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르게 움직였다. 이는 러시아가 지난 몇 년간의 전략적 고립을 단순한 버티기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정치·경제·산업 모든 영역에서 제재에 묶여 있었다. 산업화는 정체되었고, 외교적 공간은 급속히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다시 제시한 '강대국 간 직접 조정'의 무대는 푸틴에게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평화위원회는 러시아가 다시 세계 질서의 공동 설계자로 복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적 통로이기도 하다. 이번 선택은 푸틴이 더 이상 전략적 실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기 결단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번 다보스 국면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장면은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변화다.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한 반면, 러시아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푸틴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이 히틀러의 북극권 진출을 막기 위해 그린란드를 방어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덴마크의 '자격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논점을 전환했다.

이는 푸틴이 트럼프의 문제 제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유럽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적 보조를 택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군사·경제·외교·제재·시장이라는 다양한 수단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지도자다. 반면 푸틴의 가용 수단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푸틴에게 필요한 것은 트럼프의 '동의'이며, 트럼프에게 필요한 지렛대는 푸틴이라는 강력한 협상 상대다. 유럽 지도자들이 이 둘 사이의 전략적 계산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푸틴은 최종 서명 국면에서 한 차례 주저했다. 이는 러시아 내부의 제약, 유럽 변수, 제재 완화 속도에 대한 계산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방향성은 명확하다. 이번 평화위원회 참여는 푸틴이 더 이상 트럼프의 제안을 "기다리다 놓치는 선택지"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흐름은 한반도에도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미·러 전략적 수렴은 중국을 구조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낳고, 북한 문제에서도 러시아가 다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여지를 확대한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거래 가능한 질서' 속에서 러시아가 건설적으로 참여할 경우, 한반도는 대결의 전선이 아니라 조정과 관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한국 안보환경에도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푸틴의 평화위원회 참여 결정은 단순한 행사 참석이 아니다. 이는 지난 두 차례 트럼프의 제안을 실기한 데 대한 반성과 함께, 더 이상 전략적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직 모든 합의가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트럼프 개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기구의 등장은 유엔에 대한 도전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질서는 소음 속에서 조용히 재편되고 있다. 

질서 재편의 중심에는 트럼프와 푸틴이라는 두 강력한 지도자의 계산된 수렴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신호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3자회담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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