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국민 입에서 “차라리 AI 판사가 낫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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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삼권분립을 신봉한다. 입법·사법·행정이 서로 견제하지 않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재명 정권이 판사를 겁박하고 법원을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법부의 편에 서서 방패를 들어야 한다. 저들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브레이크 없는 1인 지배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한다. 그 방패를 드는 필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지켜줘야 할 사법부가 너무나 밉고, 한심하고, 유해하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대한민국을 지금의 ‘지옥’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는, 법복을 입고 판결봉을 휘두른 그 판사들이다.

그들이 저지른 파괴의 목록을 보자.

첫째,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현장을 궤멸시켰다. 세계 토픽감인 통계가 있다. 한국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되는 비율은 일본의 200배, 영국의 900배에 달한다. 선진국에선 민사 배상이나 면허 징계로 다룰 의료 과실을, 한국 판사들은 툭하면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아 의사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 구속 사태는 그 신호탄이었다. 감염 관리 실패를 살인죄처럼 다루는 법원을 보며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0%대로 추락했다. 여기에 불가항력적인 뇌성마비 분만 사고에 1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더해졌다.

결과가 나쁘면 감옥 가고, 평생 번 돈을 다 토해내야 하는 나라. 판사들이 내리친 방망이에 맞아 흉부외과와 산부인과는 멸종했고, 응급실은 셔터를 내렸다. 사람 살리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건, 의학의 불확실성을 무시한 사법부의 오만이었다.

둘째, 교실을 소송판으로 만들었다. 정당한 훈육조차 ‘정서적 학대’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판사들이 아동학대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동안, 교사들은 소송이 무서워 아이들을 방치하고 수학여행조차 없애버렸다. 교실이 교육의 장이 아니라 법적 다툼의 장이 된 책임, 그 절반은 법원에 있다.

셋째, 법치를 사유화했다.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온갖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결정적 순간마다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재판을 하염없이 지연시킨 법원의 ‘정치적 눈치 보기’ 덕분이었다. 법리가 아니라 정치 공학으로 판결한 대가를 지금 국민 전체가 치르고 있다.

그러면서 뒤로는 자기들만의 성(城)을 쌓았다.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합법적 뇌물 구조, 선관위 고위직을 독식하며 자녀들에게 일자리를 세습한 ‘음서제 카르텔’. 법을 다루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청빈’과 ‘명예’는 찾아볼 수 없고, 법 기술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으는 ‘탐욕’만 남았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에도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라”며 서릿발 같은 기개를 지켰다. 지금 법원에 김병로의 후예가 있는가. 아니면 법전을 든 장사치들만 있는가.

오죽하면 국민 입에서 “차라리 AI 판사가 낫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전관 변호사의 전화 한 통에 흔들리고, 정치권 눈치 보며 판결을 거래하는 ‘인간 판사’보다, 뇌물 모르고 감정 없는 AI가 훨씬 공정할 것이라는 조롱이다. 사회에 긍정적 영향보다 해악이 더 크다는 선고나 다름없다.

이토록 망가진 사법부지만, 우리는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설 ‘독재’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썩은 방패라도 들어야만 창을 막을 수 있는 이 기막힌 현실. 법복 입은 기술자들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러줘야 하는 2026년의 아이러니가 참담할 뿐이다.


#사법부의아이러니 #삼권분립의위기 #민주주의최후의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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