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해온 12·3 비상계엄은 어느 순간 “순진했던 판단”, “이런 바보가 어떻게 쿠데타를 하느냐”는 말로 바뀌었다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윤석열의 최후진술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간은 길었고 말은 많았지만, 법정에 남은 기류는 무거웠다. 그것은 변론이라기보다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난 한 전직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독백에 가까웠다. 그는 끝까지 ‘경고성 계엄’과 ‘계몽령’이라는 말장난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장면은 국민의 기억 속에 이미 선명하다.
국회에 군과 경찰이 들어왔고, 헌법기관의 문이 물리력 앞에서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는 “현대 문명국가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질문은 법정을 향했지만, 실은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국가에서 입법부에 무력이 동원된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는 끝내 정면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리 떼”, “광란의 칼춤” 같은 거친 표현이 이어졌다. 말은 격해졌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진술이 길어질수록 논리는 흔들렸다.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해온 12·3 비상계엄은 어느 순간 “순진했던 판단”, “이런 바보가 어떻게 쿠데타를 하느냐”는 말로 바뀌었다. 결단이었고, 동시에 실수였고, 또 개인적 착오였다는 설명이 한 진술 안에서 교차했다. 책임은 그 틈에서 증발했다.
그는 “국민이 공감한다”, “청년들은 계몽령으로 이해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정 밖의 풍경과는 맞지 않는다. 계엄이 잘못됐다는 인식은 이미 사회의 상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는 좁은 메아리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점도 강조됐다. 마치 처음부터 설계된 결과처럼 말했지만, 국회 진입 과정의 지시, 체포 명단, 병력 증원 관련 발언들은 그 설명과 충돌한다. 사실이 불리해질수록 기억은 선택적으로 흐려지고, 설명은 주변으로 흩어진다.
결정적인 장면은 말미에 있었다. 군과 경찰 수뇌부가 “지시에 따랐다”고 증언하자 그는 “특검의 위협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상명하복의 체계에서 명령을 수행한 이들이, 어느새 각자 판단으로 움직인 범죄자처럼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법정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노무현이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불러온 결과를 끝내 부정하지 않았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차라리 노무현이 되어라. 노선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실패했을 때의 태도, 권력에서 내려올 때의 자세, 역사 앞에 서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윤석열의 최후진술이 딱하고 민망하게 남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정치인의 고뇌가 아니라, 끝내 책임의 자리로 걸어 들어가지 못한 한 사람의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장면은 민주당에게는 축복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의 몰락을 사건으로 끝내지 않는다. 늘 그렇듯 사건을 산업으로 만든다. 상대 진영의 정치적 비극을 먹고 사는 구조다. 윤석열은 민주당에게 끝낼 사건이 아니라 팔아먹을 상품이다.
민주당이 선택한 무기는 ‘내란 프레임’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굴리는 엔진이 ‘윤석열 특검’이다. 특검은 수사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민주당에게 특검은 선거용 장치다. 결론이 아니라 헤드라인이 필요할 뿐이다. 속보, 단독, 추가 수사, 압수수색. 이 단어들이 매일 떠 있으면 된다. 정치가 아니라 쇼다. 국정이 아니라 연출이다.
그들이 원하는 구도는 단순하다.
“보수는 내란의 후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과 공범이다.”
이 프레임이 굳어지는 순간 정책도 공약도 필요 없다. 선거는 도덕 심판으로 바뀌고, 보수는 링 위에 오르기도 전에 판정패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특검을 반대하고, 윤석열을 감싸고, 혹은 애매하게 거리두기 흉내만 낸다. 이 세 가지는 민주당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특검 반대는 “덮는다”로 해석되고, 감싸기는 “공범”으로 확정되며, 어설픈 거리두기는 “쇼한다”로 조롱당한다. 변명하는 순간 끝이다. 정치에서 변명은 패배의 언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절연이 아니라 절단이다. 윤석열과의 관계를 “정리 중”으로 두는 순간 민주당은 그 시간을 끝까지 끌고 간다. 윤석열이 뉴스의 주어로 남아 있는 한 국민의힘은 미래로 갈 수 없다. 그가 계속 등장하는 순간 국민의힘은 계속 과거로 끌려간다. 윤석열을 주어로 두면 민주당은 그 주어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은 늘 “내란 공범”으로 끝난다.
따라서 윤석열을 보수의 노선으로 두지 말라. 그는 보수의 얼굴이 아니다. 보수가 책임지고 정리해야 할 과거다. 정치적 처분과 구조적 차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보수의 정체성을 대표한 적이 없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권력의 칼로 기능하며 박근혜 탄핵과 이후 구속 과정에 핵심적으로 관여했고, 그 과정에서 보수 진영은 뿌리째 흔들렸다.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세운 지도자가 아니라, 권력의 방향에 따라 움직인 정체성 없는 용병에 가까웠다.
윤석열 신화의 출발점도 보수의 성취가 아니었다. 문재인의 발탁과 ‘4계급 특진’이 없었다면 그는 중앙부처 과장급에 불과한 부장검사로 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가 보수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은 결국 보수 전체를 내란 프레임의 인질로 만들었다. 결론은 분명하다. 윤석열은 보수의 자산이 아니라 보수의 부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련한 동정도, 애매한 거리두기도 아니다. 절연이 아니라 절단이다.
그러나 진짜 독은 따로 있다. 윤석열이 아니라, 윤석열을 매개로 살아남는 당내 기생집단이다. 이른바 친윤은 얼굴로 싸우는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토론으로 드러나지 않고 책임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공천과 당직, 라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만 작동한다.
윤어게인이라는 확증의 공동체를 방패로 삼아 당을 잠그고, 필요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 상대를 낙인찍는다. 보수의 미래를 말하면 배신자를 외치고, 책임을 묻는 순간 숙청을 외친다. 정치가 아니라 기생이다.
여기서 냉정한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이미 현 지도부의 탄생에도 작동했다면, 지금 당장 친윤을 정면으로 치는 것은 태생적으로 어렵다. 의총의 숫자도, 당내 권력의 축도 그들에게 유리하다. 지금 무리하게 칼을 뽑으면 칼날은 친윤이 아니라 당 전체를 향해 되돌아온다. 민주당은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보수의 내분은 특검 장사의 연료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이 아니다. 차단이다. 윤석열 어게인을 떠받치는 실질적 동력은 정치인이 아니라 일부 보수 유튜버들이다. 이들은 당원이 아니고 책임도 지지 않으며, 선거에서 지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조회수와 후원금으로 정치에 개입한다. 분노를 자극해 구독자를 늘리고, 음모를 확대해 영향력을 키운다. 정치적 책임은 없고 정치적 효능감만 소비한다. 윤어게인은 이 생태계 속에서 재생산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윤석열을 피해자로 만들고, 보수를 음모의 공동체로 묶는다. 현실의 패배는 배신으로 치환되고, 전략의 실패는 숙청으로 포장된다. 선거는 부정되고 책임은 사라진다. 당은 정책 정당이 아니라 분노 플랫폼으로 전락한다. 보수의 언어는 과격해지고, 중도는 조용히 이탈한다. 이것이 윤석열 어게인이 남긴 실제 정치적 폐해다.
따라서 윤석열과의 절단은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윤어게인과 결합한 유튜브 정치의 영향력 차단이 병행돼야 한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이 생태계에 출연해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당의 공식 채널과 행사, 메시지에서 이들과의 접촉을 구조적으로 끊어야 한다. 조회수 정치에 휘둘리는 순간, 보수는 정책이 아니라 댓글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으로 전락한다.
윤석열 어게인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충성심이 아니라 공포다. 공격받을까 두렵고 낙인 찍힐까 피한다. 그러나 정치는 용기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조로 해석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지지층을 잃을 각오”다. 그 각오 없이는 외연 확장도 선거 승리도 없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윤석열을 절단하고, 윤어게인을 배제하라. 윤석열이 뉴스의 주어로 남아 있는 한 국민의힘은 정책도 미래도 말할 수 없다. 내란 프레임을 깨는 방법은 반박이 아니라 격리다. 윤석열을 끊는 수준이 아니라, 윤석열의 흔적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민주당은 특검으로 선거를 끌고 갈 명분을 잃는다. 그 순간 특검은 정의가 아니라 장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민주당은 도덕의 링에서 상대를 때리는 정치를 끝내고, 정책의 링으로 끌려 나온다. 민주당이 가장 싫어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칼은 총선 정국에서 뽑으면 된다. 총선을 준비하는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는 순간, 공천과 당직과 라인이라는 산소통을 끊는 칼을 뽑아야 한다. 친윤 공천은 패배 공천이라는 공식을 당의 규칙으로 못 박고, 승리를 기준으로 후보를 걸러내며, 줄세우기 공천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은 “완전 절연”을 체감한다. 얼굴이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었음을 확인한다.
정치는 성공으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를 대하는 방식은 지도자의 마지막 얼굴을 결정한다. 정당의 마지막 얼굴도 결정한다. 윤석열이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이제 보수가 책임을 집행해야 한다. 절연이 아니라 절단이다. 새 사람, 새 규칙, 새 판.....그것만이 민주당의 특검 엔진을 꺼버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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