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구형의 법정, 분노와 광기가 충돌한 그날의 변론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날카로운 긴장감이 법정을 흐르고 있었다.
방청석을 정일경 감독과 그 일행이 가득 채웠다. 정 감독의 눈빛이 면도날 같이 번쩍였다. 법이 제대로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해 주는 것인지 보기 위해서 온 것이다. 방청석 다른 한쪽 구석에는 홍진욱의 누나와 여동생이 숨도 못 쉬고 죽은 듯 앉아 있었다.
"검사 의견 진술해 주세요."
몇 년 징역을 요구하는지 말하라는 것이다. 담당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논고문이 들려 있었다.
"피고인 홍진욱은 죽은 정은희의 아버지가 증인으로 출석하기 직전 편지를 보냈습니다. 합의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자신의 재판 과정을 민감하게 지켜보면서 저울질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방청석에서 사람들이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곤두 세우고 있었다.
"홍진욱은 수사 과정에서 처음에는 정신병자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앉자 일부 진실을 거짓과 섞어 형사에게 진술했습니다."
방청석의 정일경 감독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옥에 들어앉아 증인들을 조정하고 사건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교활함을 보였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홍진욱의 얼굴이 하얘졌다. 검사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홍진욱을 보았다. 가증스럽다는 눈빛이었다.
"검찰은 피고인 홍진욱이 최근 가족을 통해 정신병과 뇌에 관한 책을 구치소로 들여보내 달라고 해서 연구한 흔적을 발견 했습니다."
폭탄발언이었다. 나도 몰랐다. 방청석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고인의 정신분열증상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법정이 열렸을 때 피고인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피고인이 제출한 반성문을 보면 모든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피고인의 진짜 모습일까요?"
나는 그가 두 가지 모습이라는 걸 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한 사람 안에 두 인격이 있는 것 아닐까. 검사가 계속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고인에게서는 와해된 사고나 의식의 혼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환청과 환각 같은 지각장애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검사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서류 한 장을 재판장에게 보였다.
"본 검사는 정신 분열증에 관한 대법원 판례 하나를 제시하겠습니다. 내용은 정신분열증 진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인멸 공작이나 공판정에서의 태도를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심신장애는 인정되지 말아야 합니다."
검사는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홍진욱의 심장을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피고인은 극히 정상적입니다. 차분하며 범행의 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자기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범행도 정신병자의 행위가 아닙니다. "
그렇다. 보통의 정신병자는 살인하지는 않는다. 악령이 홍진욱의 옆에서 검사를 보면서 검은 웃음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피고인은 자신의 성공을 바라는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그 아내는 피고인을 우상으로 섬기고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피고인은 그런 아내를 죽이고도 자신이 살기 위해 교활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검사가 말을 멈췄다. 결론부분에 도달한 것 같다. 검사가 홍진욱을 바라보았다. 준엄한 눈빛이었다.
"본 검사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피고인 홍진욱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합니다."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변론하시죠"
재판장이 내 쪽을 향해 사무적으로 말했다. 잠시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죽은 정은희의 아버지와 그 일행이 화살 같은 증오의 눈길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막막했다. 나는 살인자를 돕는 악역이었다. 입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악령이 홍진욱을 마지막으로 철저히 파괴하려는 순간이다. 악령은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나는 그 악령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세상이 믿을 리가 없다. 내게만 보이는 악령이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기도했다.
그 분이 내 입을 열어달라고.
변호사로의 사명이 있다.
두려워도 당당해야 한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나는 변론을 시작했다.
"피고인은 정은희와 결혼하기 이전에 이미 정신분열 증상이 있었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진단서가 그걸 증명합니다. 그게 허위였을까요?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후배가 피고인을 다시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게 했습니다. 그 담당 의사가 이 법정에 증인으로 와서 여러 의사들의 회의 결과 정신 분열로 결론을 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게 거짓일까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방청객의 눈이 내게 쏠리고 있었다.
"검사는 홍진욱을 재판을 저울질하고 조정하려는 교활한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정은희의 아버지가 증인으로 나가게 되자 합의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행위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은 그 행위를 어떻게 보십니까. 좀 더 깊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재판장이 묵묵히 듣고 있었다.
"딸을 죽인 범인이 '합의합시다' 라고 한다면 아버지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저는 증인으로 나온 정일경 감독이 법정에서 폭발한 분노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진욱은 불꽃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고 할까요. 그 행위가 정상일까요? 더 나아가 홍진욱은 장인이 딸을 빼돌려 감추고 생쑈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검사님은 그런 홍진욱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변호인이 보기에 그런 진술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형량을 줄이기 위한 교활한 행위도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검사님은 홍진욱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만 살기 위해 교활한 행동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죽은 아내 옆에서 홍진욱은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손목 혈관을 카터 칼로 끊은 상태였습니다. 그게 위장이었을까요? 아니면 후일 형량을 줄이려는 교활성이었을까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홍진욱은 '그놈'이라는 어떤 존재를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칼과 무기를 집안에 가득 들여놓고 대비했습니다. 자신과 처를 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검사님의 주장대로 홍진욱이 멀쩡하다면 '그놈'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실지 의문입니다."
나는 공식적인 법정에서 그걸 '악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검찰은 홍진욱이 정신병에 관한 책자를 구치소에 들여놓고 재판에 대비해서 연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홍진욱은 자신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미친놈 취급을 받고 있는 걸 싫어합니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정신 증상에 관한 책을 공부했다는 게 저의 추측입니다."
본론을 꺼낼 때가 왔다. 방청석의 정 감독이 보였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를 의식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나가 처인 정은희에게 동생을 데리고 가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정은희는 남편의 상태를 알고서도 짐승처럼 집이라는 우리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접촉을 못하게 했습니다. 홍진욱의 영혼은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방청석에서 정 감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편보다도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포장지가 더 중요했던 것 아닐까요? 본 변호인은 죽은 정은희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남편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녀 자신의 야망이었다고 봅니다."
그때 방청석의 정 감독이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 앞으로 나왔다.
판사부터 방청객까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가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찌르는 듯하면서 소리쳤다.
"당신 그따위로 말하면 안돼."
법정 전체가 얼어붙었다.
"개수작하지 말아. 어디서 멀쩡한 놈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빼내려고."
재판장은 침묵했다. 침 뱉음을 당하는 나를 막아주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정 감독을 보고 말했다.
"이 자리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제단이기도 합니다."
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개수작' 뭡니까? 변호사는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판사가 합니다. 신성한 법정을 흙발로 짓밟지 말고 나가 주십시오. 당신 딸을 죽인 범인을 단죄하는 이 재판정을 존중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가 움찔했다. 그가 방청석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마치겠습니다."
내가 재판장을 향해 말했다.
"피고인 최후진술 하시죠?"
재판장이 말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선 홍진욱이 눈을 흐릿하게 뜨고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예요. 장인인 저 양반은 자기 딸이 죽은 날에도 영화 촬영으로 바쁘다고 경찰에도 가지 않은 사람이예요. 그 딸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대히트를 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숨도 못 쉬게 몰아부쳤어. 나는 아팠어. 집에는 아무도 없고. 그 놈만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나타났어."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재판장을 향해 소리쳤다.
"앞으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방청석 뒤쪽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죽어야지 무슨 헛소리야. 그냥 목 매달아 죽어라."
잠시 후 나는 법정을 나왔다. 복도에는 정 감독과 그가 데려온 우람한 체격의 스태프들 열 명 가량이 서 있었다. 그들이 다가오더니 나를 둘러쌌다.
"살인범을 정신병자로 만들려고 장난치는 변호사 새끼야"
험악한 분위기였다.
"너 좀 맞아야겠어."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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