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기업은 어느 순간 ‘망하면 안 되는 기업’이 된다

[최보식의언론=이양승 객원논설위원(군산대 무역학과 교수), 박묘숙 기자]

YT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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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면 좋다. 여기서 생각해볼 게 있다.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36%에 육박했다. 지수가 오르고 있으니 증시가 살아나는 듯 보이지만, 이 숫자는 한국 자본시장이 얼마나 심각한 구조적 편중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등에 가깝다.

이제 코스피는 ‘한국 경제 전체의 성적표’라기보다 사실상 ‘반도체 업황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지수란 원래 시장 전체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체온계다. 하지만 지금의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SK 온도만 재는 기계처럼 변했다. 수백 개 종목이 부진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오르면 지수는 상승으로 표시된다. 이른바 ‘지수 착시’가 일상화된 것이다. 시장 내부는 병들어 가는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자산 배분 구조다. 국민연금, ETF, 인덱스 펀드, 퇴직연금 자금은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자동으로 이 두 종목에 쏠린다.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의 노후자산 상당 부분이 반도체 업황이라는 단일 변수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 사이클이 꺾이거나 미·중 기술 갈등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 이는 단순한 증시 조정이 아니라 국가적 금융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자본시장은 원래 미래 산업에 자본을 배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증시는 그 기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반도체로 돈이 몰릴수록 바이오, 로봇, 소프트웨어, 콘텐츠 같은 신산업은 만성적인 저평가와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 “어차피 지수는 반도체가 끌고 가는데 굳이 위험한 곳에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면, 산업 구조는 점점 더 단조롭고 취약해진다.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기업은 어느 순간 ‘망하면 안 되는 기업’이 된다. 세제, 전력, 통상, 산업정책까지 이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갈 유인이 커진다. 산업정책이 국가 전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가 아니라, 특정 기업의 안정을 보장하는 장치로 변질될 위험이다.

이는 일종의 ‘금융시장판 네덜란드병’이다. 한 산업이 자본과 관심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다른 산업들이 공동화되는 현상이다.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제의 복원력이 급속히 약해진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충격은 증시를 넘어 실물경제와 재정, 연금까지 동시에 흔들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 경제의 핵심 기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자본시장이 두 기업에 36%를 걸고 있다는 사실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일 수도 있다.

건강한 시장은 몇 개의 거목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이 숲을 이루는 구조다. 코스피가 다시 ‘한국 경제의 지수’가 되지 못한다면, 다음 하락 국면에서 우리는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충격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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