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유훈자의 서훈을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박탈해야

[최보식의언론=김덕영 영화 '건국전쟁2' 감독]

뉴스TVCHOSUN 캡처
뉴스TVCHOSUN 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주 4.3사건 당시 남로당 토벌작전 공로로 1948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한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결정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편집자)

이재명 정부가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취소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12월 10일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공식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5일 만의 일이다.

세상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군인을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취소한 사례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라도 하는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이야기다.

세상에 어떤 존재도 시간을 거꾸로 거스를 수는 없다. 1948년 박진경 대령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국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자는 당연히 국가유공자가 되는 게 맞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그걸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을 뒤집으려면 이재명 정부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유훈자의 서훈을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박탈해야 한다. 유사 이래 그런 법률도 없고, 비슷한 사례조차 전 세계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권력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유공자의 서훈을 박탈한다? 그게 가능해지면 역사는 아비규환에 빠진다. 권력이 시간을 거슬러서 공과 과를 판단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 사회를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문을 여는 행위다. 

만약 그게 가능하면, 5.18유공자도 정권이 바뀌면 자기 마음대로 바꿔도 된다는 뜻인가? 모든 역사적 평가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범죄에도 '공소 시효'라는 것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의 효력이 상실되고 범인에게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형벌의 고통이 존재했음을 인정한다는 근대 사법제도의 원칙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죄 그 자체보다 인간을 우선한다는 휴머니즘이 우선한다는 것을 인류 문명이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다.

하물며 범죄도 그런데, 공을 세운 군인에게 내려진 '훈장'을 70년도 더 지난 2025년 현재의 정부가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 없이 자기 마음대로 훈장의 서훈을 박탈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반문명, 반지성적 사회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 정부가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일을 자초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현재 제주4.3 좌파 단체들이 박진경 대령을 비난하는 근거는 그가 1948년 5월 6일 부임 직후 '제주도민 30만 명을 살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인데, 그것은 사실을 거짓으로 왜곡시킨 전형적인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음은 '제주도민 30만 살해설'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이다.

영화 '건국전쟁2' 중
영화 '건국전쟁2' 중

1948년 8월 14일 자, 조선중앙일보 보도는 암살범들의 공판 기록이기도 하다. 제주4.3 단체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벌리고 있는 '제주도민 30만 살해설'은 애초에 제주4.3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1948년 5월 10일, 김달삼은 남로당 비밀회의를 통해서 새로 부임한 박진경 대령의 암살을 지시했다. 김달삼의 암살 지시는 그가 직접 작성한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에 현재도 그대로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문창송, ‘한라산은 알고 있다, 1995년)

1948년 당시 제주에서 이러난 4.3사건과 박진경 대령의 암살을 둘러싼 객관적 사실 관계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자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객관적 기록들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진상보고서‘에서는 하나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박진경 대령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원인이다.

1948년 8월 11일 자 '호남신문'
1948년 8월 11일 자 '호남신문'

박진경 대령 암살범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1948년 8월 10일을 전후로 해서 동일한 내용의 기사는 현대일보, 남조선신보, 국제신문 등에서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많은 객관적 기록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제주4.3진상보고서‘에는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4.3사건이 객관적 사료에 의해서 정리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책략 속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당시 '제주4.3진상조사단'을 총 책임지는 기획단장은 정치인 박원순이었다. 역사학자가 맡아야 할 일을 왜 정치인 박원순이 맡았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진실로 향하는 문도 열릴 것이다.

제주4.3 단체들은 박진경 대령이 학살의 주동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주4.3진상보고서'의 데이터에는 박진경 대령이 암살 당한 이후였던 1948년 10월 중순부터 1950년 6월까지 총 12,377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진경 대령 사망 이후 전체 사망자의 86%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다. 박진경 대령이 제주4.3 사건의 학살의 주동자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기록은 좌파들이 작성한 문서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제주11연대장으로 총 43일 부임하고 암살당한 박진경 대령, 그의 부임 당시 교전 중 사망자는 총 25명이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제주4.3단체들은 무슨 근거로 박진경 대령을 학살의 주동자로 몰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현 이재명 정부는 무슨 근거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박진경 대령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인가?

영화 '건국전쟁2' 중에서
영화 '건국전쟁2' 중에서

오히려 박진경 대령의 인간적인 면모와 명예로운 업적들을 입증할 자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주4.3 당시 박진경 대령의 부관이었던 임부택 대위는 1996년 발행한 그의 저서, 『낙동강에서 초산까지』에서 박진경 대령의 피살 소식에 친형이 전사한 것 이상으로 비통했다고 하고 있다.

"박 대령의 비보를 들은 나는 비통함을 형언할 수 없었다. 제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함께 제주로 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이는 마치 친형이 전사한 것 이상으로 비통했다." (’낙동강에서 초산까지‘, 그루터기, 1996. 40쪽)

베트남전의 영웅으로 평가 받는 채명신 장군 역시 박진경 대령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박진경 대령의 작전이 토벌에 중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을 구출하는 선무 공작에 중심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박진경 대령 부임 당시 소대장을 맡아 작전에 투입되었던 채명신 장군은 현장에서 박진경 대령의 지시에 감동을 받은 일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채명신 장군의 이러한 증언은 곧 박진경 대령의 인간적 면모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박진경 대령이 부임했던 1948년 5월 6일, 상황은 아직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이었다. 당시 군은 미군정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총 한 방 쏘는 것도 미군의 지시를 받아야 했다.

박진경 대령으로 사령관이 교체된 시점이 5.10총선거 5일 전이었다. 당시 5.10총선거는 미군정의 핵심 공약이었다. 선거를 통해 하루 빨리 남한에 정권을 세우고 빠지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목적이었다.

미군정의 목적은 오직 하나, 5.10선거를 안정적으로 치르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도민 30만 살해 명령' 같은 강경 진압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선거를 안정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압이 아니라 '선무 공작'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모든 자료가 입증하고 있듯이 박진경 대령은 제주4.3 사건 당시 무고한 양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 기초가 되는 대한민국의 설립을 위한 5.10총선거를 안정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끝까지 노력했던 진정한 군인이었다.

그에게 '을지무공 훈장'이 수여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였다. 그런 그가 '국가유공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국가를 위해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은 군인이란 말인가.

더 이상 박진경 대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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