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좋아하는 나라의 빈 사과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아래 글은 본지의 입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게재합니다.(편집자)
야당의 일부 의원들이 계엄을 막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우리는 '사과'를 참 좋아한다. 마땅치 못한 일이 있으면 책임자들에게 고개를 푹 숙여서 사과하라고 난리다.
필자는 권력이 있고 재력이 있는 자들이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것으로부터, 서민들은 그들을 제압했다는 유치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너희도 별거 없다'는 자신의 위상이 올라간 것만 같은 허상의 착각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사과 요구가 빗발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 문제가 있을 때 죄송하다는 사과가 그리 중요한가? 그 일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재발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한치의 진전이라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이고 방안을 찾았으면 실천을 담보하는 일이 중요하지 카메라 앞에서 '죄송합니다'라며 정수리를 보여주는 일이 무슨 도움이 될까?
사과를 강요해서 때로는 마음에 없고,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거짓된 사과를 요구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다중이 개인에게 가하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실수를 해서 그렇지 않아도 궁지에 몰린 측에 그 사건이 발생한 책임과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설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사과'부터 하라는 것은 인민재판의 또 다른 모습인 경우가 자주 있다.
필자는 야당 일부 의원의 계엄 1년 관련 사과는 우리 사회의 그 흔해빠진 이런 "사과"들의 전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책임과 권한이 없는 일을 사과하고 자신들이 책임 있는 일은 언급조차 없거나 실천의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게 얼버무리고 있다.
계엄과 탄핵을 국힘당 의원들이 어떻게 막을 수 있었나? 계엄은 각료 등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저지른 일이다. 국힘당이나 의원들에게 의사를 묻고 한 일도 아니고 의원들이 윤 전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절차도 없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계엄 해제 의결권'뿐이었고 그렇게 진행되었다. 탄핵은 헌재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를 어떻게 국회의원들이 사전에 막을 수 있나? 그 소수당으로 탄핵 소추를 막을 수 있었나?
자신들이 권한도 없는 일에 책임을 자임하고 반성한다고 한다. 이런 반성이 진정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가? 재선이 위험해진 위기의 발로로 사과하면 용서하고 잊고 지나가는 한국 국민들의 지독한 망각증을 믿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책임 있는 일에 대해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근본 원인은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당을 장악하고 지배하려고 당원이 뽑은 당대표를 당 내부 구테타로 축출하고, '윤핵관'이라고 지칭되는 아부꾼들과 윤통의 뜻에 따라 민주주의가 죽은 정당으로 퇴행했다는 데 있다.
진정 사과한다면 그때 높은 곳의 뜻에 따라 윤석열 정당화하는 데 입장문을 발표하고 당원이 선택했던 지도부를 비상체제로 전환할 때 당직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퇴 요구라도 있었어야 했다.
김건희 사안이 반복적으로 터졌을 때 변호했던 인사들, 침묵했던 인사들에 대해 사과 의원들은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인가?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리했을때 비판한 의원이 있었나? 버젓이 뇌물 받아먹는 동영상이 배포되고, 양평 특혜 의혹이 터져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국회에서 야당 질의로 판판이 깨질 때 그 변론이 잘못되었고 엄정 수사하라고 한 당의 인사들이 있었나?
집권 정부가 내세울 경제 정책 하나 없이 집권 내내 부정 평가가 긍정평가를 압도하고, 내수가 지속적으로 침체하는데 아무런 대책 한번 제시한 적이 없는 정당,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떨어져서 아무도 부동산 이야기 안 하니까 신규 건설이 사라져서 지금의 부동산 위기가 명약관화했는데 아무런 부동산 대책하나 세우지 못한 정당, 말도 안 되는 의대 2000년 정원과 기습적인 R&D 예산 삭감으로 강력한 지지 세력인 의료계, 과학계를 적으로 돌린 대통령의 똥고집에 대놓고 반대도 못한 정당, 이것이 당신들이 책임이 있는 영역이다.
그 책임과 원인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신뢰할 만한 대책도 없이, '죄송합니다' 하고 '앞으로 잘하겠습니다'가 전부다. 정책 정당, 대안정당, 수권정당을 만든다고? 국민이 권력을 주어도 매번 지키지 못하고 상대에게 반납하는 그 정당이 새롭게 수권정당이 된다고? 수권 시켜주면 반납하는데?
아무런 개혁 조치도 없이? 아무런 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없이? 지금도 여당의 아젠다에 끌려다니기만 하고 아무런 대안 정책도 아젠다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지방선거에서 밀어주면 잘하겠다고?
당권과 다른, 강성 지지자들의 뜻과 다른 사과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선 절심함과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당사자들은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사과가 목표로 하는 것이 기억력 짧고 감정적인 반응의 국민들이 원하는 빈 사과를 주는 의식이지, 진짜 사과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권력이 힘이 세어 보일 때 그 앞에 풀잎처럼 눕던 사람들이 그 권력이 없어지고 나서, 앞으로는 민주적 정당을 만들겠다는 그 위선과 비겁함과 변명이 납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단의 근본 원인은 국힘당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자와 다른 의견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축출하고 발언권을 빼앗고, 입틀막 해야 한다고 지금도 주장하는 충성자들이 득세하는 한 우리는 이 사과가 정당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어느 당도 다르지 않다. 다 당의 권력자들의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위인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의 결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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