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태도가 내가 만났던 다른 죄인들과 달랐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2005년 여름. 타고 가던 택시 안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소설가협회 이사장 정을병 씨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지원되는 정부보조금 수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이 됐습니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는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다. 그중 '개새끼들'이라는 특이한 제목이 나의 의식의 벽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그렇게 세상에 대고 소리쳤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힐끗 보더니 냉소적으로 한마디 던졌다.
"개새끼들 눈먼 돈만 있으면 꼭 저렇게 해처먹는다니까."
그 얼마 후 그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문학계의 원로이고 칠십대 중반의 노인을 법원이 상당히 나쁘게 봤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그는 민주화 공로자로 인정된 인물이었다. 판사의 은은한 분노가 있었을 것 같다. 가난한 문인들의 돈을 정말 먹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가을에서 초겨울로 바뀌는 스산하던 어느 날 육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부인이 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소박한 검은 코트에 차분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같은 고향인 남해 출신 잡지사 사장의 소개로 왔어요. 저는 소설가 정을병의 아내입니다. 이제 항소심 재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심정이 담긴 어조였다.
"변호사비를 300만 원에 안 될까요?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그래요."
수억을 횡령했다는 뉴스가 허위였을까. 돈이 없다는 게 정말일까. 의문이었다.
"남편이 도와달라고 했어요. 자기 재판은 법관이나 검사와 싸우는 자존심 있는 재야 변호사가 필요하대요."
뭔가 이면이 있을 것 같은 변호사의 직감이 발동했다. 동시에 평생 글을 써 온 정을병이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중학 시절 탐독했던 한국문학전집에 '개새끼들'이라는 제목의 그의 책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누가 개새끼일까.
며칠 후 나는 구로동에 있는 영등포 구치소 앞길을 걷고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길다란 회색 콘크리트 담을 따라 잎이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접견실이라고 하지만 투명한 유리박스 안이었다. 그곳에 있을 때마다 동물원의 침팬지 우리가 떠올랐다.
그곳으로 70대쯤으로 보이는 그가 들어왔다.
깡마른 몸에 형형한 눈빛이었다. 하늘색 점퍼와 바지의 죄수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의 태도가 내가 만났던 다른 죄인들과 달랐다. 쑥스럽거나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전혀 없었다. 너무 당당해서 내가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는 죄인의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있는 감옥조차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는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형식적으로 물었다. 그는 벌써 다섯 달째 이곳에 있었다.
"밖에 있을 때나 비슷해요. 책을 읽고 명상을 하죠."
카랑카랑한 힘 있는 목소리였다. 칠십대 노인답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위선일까.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난 횡령한 적이 없어요."
그가 짧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런데 왜?"
감옥에 들어왔느냐는 말은 생략했다.
"받을 돈을 받은 거지."
나는 놀랐다. 너무 강하고 역설적인 대답이었다. 일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잘못했다고 해도 용서받을까 말까였다. 1심 재판장에게도 나한테 말한 것 같이 그렇게 덤볐을까.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통장의 돈이 협회에서 왔지만 그 돈은 착복한 게 아니고 문단을 위해서 쓴 거요."
"구체적으로요?"
"기부받기 위해 차비하고 밥 먹고 그 정도."
그가 잠시 멈췄다.
"검사가 아무리 뒤져도 딱 그것 밖에 안 나왔어요. 다른 건 한 푼도 없어요."
액수가 작아도 법적으로는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죄의식이 없었다. 형식적인 법 논리와 양심의 차이일까. 그의 당당함에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세상은 지금 엄청난 오해를 하는데 해명하셔야죠."
"설득이나 변명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가 한마디로 말을 끊었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뭐. 모략하는 놈들한테는 대꾸할 필요조차 없어요."
나는 그를 보았다. 굽히지 않는 꼿꼿한 등이었다. 그의 시선은 유리 칸막이 밖의 콘크리트 바닥을 무심히 향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엄 변호사님."
"네."
"난 지금 감옥에서도 쓰고 있어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침뱉음을 당하고 날아오는 돌에 맞고 창에 찔리면서 피를 흘리는 이 처절함을 펜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중이요.“
말문이 막혔다.
감옥에서도 소설을. 지금 이 순간 조차. 나는 깨달았다. 보통사람이 아니다. 내 잣대로 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사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을 것이다. 글쓰기란 그의 구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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