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우리 같이 비자금을 만들어 챙겨 쓰기로 했잖아요?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나는 법원에 가서 수사기록을 복사해왔다. 사무실 책상 앞에서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변호사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기록을 펼치면 눈 앞에 가상공간이 나타난다. 그 공간에 들어가서 와글대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분노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내 앞에 경찰서 수사과 광경이 나타났다. 파란 형광등 불빛 아래 철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형사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다. 형사 앞에 정을병과 소설가협회 여직원이 나란히 앉아 있다.

"소설가협회 사무실에는 몇 명이 근무합니까?"

형사가 여직원에게 물었다.

"회장님하고 사무국장, 그리고 여직원인 저, 세 명입니다."

"돈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단돈 천 원까지 회장님의 결재를 받았습니다. 입금, 출금 및 영수증까지 전부 회장님이 꼼꼼하게 챙기면서 서명을 했죠."

여직원의 눈에는 원인 모를 독기가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막다른 곳으로 몰린 쥐 같다고 할까.

"회장님은 자기가 쓰는 소소한 경비까지 협회 공금에서 가져갔어요. 직원인 저는 장부에 그 돈을 맞추느라고 정말 힘들었어요. 회장님은 나라 돈은 떼어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형사가 이번에는 그 옆에 있는 정을병에게 말했다.

"지금 여직원이 하는 말 들으셨죠? 회장님 주도로 거액의 횡령사건이 벌어진 거네요. 빨리 자백하시고 사건을 끝내시죠"

"나는 단 한 푼도 횡령한 적이 없어요. 협회에서 받아야 할 내 원고료나 저작권료도 받지 못했는데 무슨 횡령 같은 소리를 해요?"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고료가 아니고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다면서요? 국가에서 가난한 작가들에게 주라고 내준 돈. 왜 딴 소리를 합니까?"

형사의 목소리가 치켜 올라갔다.

"국고에서 나오는 돈은 바르게 쓰라고 오히려 내가 직원들에게 주의를 줬죠. 무슨 소리?"

그 말에 여직원이 되받아쳤다.

"회장님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죠. 수시로 국고보조금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따로 비자금을 만들어 챙겨 쓰기로 했잖아요?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형사가 증거를 들이댔다.

"여기 압수된 통장을 보세요. 국고금을 예금한 협회통장이죠? 여기서 정을병의 개인 통장으로 돈이 갔어요. 이게 횡령이 아니면 뭡니까? "

형사가 이어서 물었다.

"여직원에게 허위의 결산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죠?"

"그런 적 없어요. 결재가 올라오니까 그렇게 지출된 걸로 알고 싸인해 줬을 뿐입니다."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고 말썽이 생길 것 같으니까 허위자료들을 폐기시키라고 명령하셨잖아요?"

형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사실 없다니까."

"여직원이 다 폭로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니?"

형사가 분노하고 있었다.

조사받는 책상 위에는 소설가들이 보낸 진정서들이 쌓여 있었다. 펼쳐진 진정서의 내용들이 보였다.

'문단의 쓰레기입니다.'

'가난한 작가들의 피를 빤 파렴치한입니다.'

'엄벌에 처해 주십시오.'

저주가 담긴 진정서들이 수북이 쌓여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수사의 대척점에서 일해 왔다.

나는 관점을 이동해서 보는 직업적 습관이 있다. 당연한 것도 ‘왜?’라고 묻는다. 더러는 거꾸로 본다.

나는 경찰서 조사실이라는 가상공간을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식은 커피를 마셨다. 시계를 보니 오후 여덟 시였다. 직원은 퇴근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나는 증거물들을 보기 시작했다.

먼저 정을병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들춰봤다. 협회 통장에서 정을병의 개인통장으로 송금한 내역이 있었다. 매달 15일 300만 원씩 보냈다. 1심 재판부는 이것을 횡령의 증거로 봤다. 이상했다. 보통 횡령범들은 은행에서 돈을 현찰로 뽑는다. 아니면 제3자 명의의 차명계좌로 가게 한다. 협회 통장에서 개인통장으로 송금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이상했다.

압수물 목록에는 한 개의 통장이 더 있었다. 여직원이 보관하고 있던 비자금 통장이었다. 비자금 통장의 거래 내역과 거기서 출금한 돈이 어디로 갔는지 대충 조사되어 있었다.

여직원이 그 돈으로 고급차를 구입하고 애인의 신용카드 대금도 갚아줬다. 그 통장의 돈으로 남자 직원이 아파트를 사고 주식에 투자한 것도 조사되어 있었다. 회장이 그 비자금 통장에서 인출해 쓴 돈은 발견되지 않은 것 같았다.

뭔가 퍼즐이 맞지 않았다.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정부보조금이 나왔다. 수억 원 정도였다. 그 돈의 대부분을 직원 두 명이 사용했다.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 

비자금 통장에서 돈을 횡령한 여직원은 거리를 활보하고 정을병은 구속이 됐다. 법적인 형평이 맞지 않았다. 나는 서류를 더 뒤졌다. 이사회 회의록을 발견했다.

2004년 2월 20일 이사회의 결정사항이 적혀 있었다.

'회장 활동비로 매월 300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의함.'

수사기관의 장난이 아닐까라는 직감이 들었다. 자신의 수사가 신문에 나는데 환장을 하는 공명심에 들뜬 검사나 형사들이 많았다. 진급에도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공명심은 때로는 엉뚱한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담당 수사망의 그물에 문단의 거물인 정을병이 포착된 것이다. 여직원을 회유해서 거물을 엮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직원의 불구속이 그걸 반증하는 것 같았다. 약점을 가진 여직원은 노예가 되어 끝까지 검사의 요구대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검사는 수사과정을 언론에 흘려 여론몰이를 했을 것이다. 거물들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면서 대중들은 쾌감을 느낀다. 돈키호테 같은 민주화 투사 정을병은 판사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자기가 횡령을 하지 않았으니까. 판사들은 진실을 불문하고 그런 저항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두 시였다. 커피 잔이 네 개 쌓여 있었다. 나는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사무실 앞 전신주에서 가로등이 묵묵히 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여직원의 진술 조서를 펼쳐 보았다.

조서 속에서 여직원의 말이 글씨가 되어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회장님, 우리 같이 비자금을 만들어 챙겨 쓰기로 했잖아요?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그 짧은 문장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문인의 심장에 박히는 비수일 수 있다. 조서의 행간에서 야심에 들뜬 검사의 차디찬 비열한 인간성과 그 반대쪽에 있는 그의 고독하고 무거운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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