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능이 내게 지시했던 일이 뭐였지?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의젓한 교수 같아 보이는 장년의 남자가 화면 속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저는 원래 법학을 전공하다가 명리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사람들마다 어려서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남들이 하는 멋있는 걸 해보려고 다른 길로 갑니다. 저는 그런 걸 팔자가 꼬인다고 표현을 합니다."
우연히 그 말이 날아와 나의 가슴에 꽂혔다. 그도 법학이 그의 팔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법을 공부하고 일생을 법쟁이로 살아온 나는 그게 내 팔자였을까. 나의 본능이 내게 지시했던 일이 뭐 였지?
나의 뇌리에 각인된 오래된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펜으로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메우는 배우 신영균의 모습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막연한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현대문학'에 발표된 단편소설을 호기심으로 읽어 보곤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오는 거 어떻겠니? 3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의 자식이 들어올 때 면접에서 혜택이 있다는데 말이야."
아버지는 조선일보의 사진기자 출신이었다. 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아버지가 집에 월급을 들여오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신문사를 가서 봤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작은 책상들을 닥지닥지 붙여놓고 와글거리고 있었다.
반면에 영화에서 보는 판검사나 변호사는 멋있어 보였다. 대학 1학년 때 변호사인 친구 아버지의 사무실을 간 적이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 넓은 책상이 있고 책장에는 손때 묻은 법서들이 꽂혀 있었다. 여비서가 있었고 밖에는 번쩍이는 차에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변호사는 지성과 부를 상징하는 직업이었다.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고시에 합격하고 직접 대해 본 현장에서 과거의 환상이 허물어졌다. 검사직무대리로 몇 달간 검찰청에 근무했다. 오전이면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피의자들이 왔다. 그들과 함께 빨간딱지가 붙은 기록들도 도착해 책상 위에 놓였다. 그 기록들을 들추는 순간 악취가 피어올랐다. 재래식 공중변소의 벽에 써 있는 낙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판사 일을 배운다고 법원에 1년을 있었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판사 일은 책상 위에 기록들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보는 일이었다. 기록들은 재미없었다. 남의 곗돈을 셈해줘야 했고 이자 계산도 골치가 아팠다.
판사들끼리 식사를 할 때도 속에서 밥알이 곤두섰다. 서열대로 걸어야 하고 식당에서도 서열대로 앉아야 했다. 말도 높은 순서대로 했다.
변호사의 일도 그랬다. 드라마 속에서는 멋있었지만 실제는 달랐다.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탐욕스러웠고 거짓말을 해주기를 원했다. 불법과 탈법의 방법을 가르쳐주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 적도 많았다. 천직이거니 자신을 위로하면서 살았다.
마침내 4년 전 하던 일을 접고 동해 바닷가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70년 인생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 같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바닷가를 산책한다.
명리학을 했다는 그 남자의 말대로 나도 겉으로 폼 나 보이는 것을 따르다가 팔자가 꼬였던 것일까.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변호사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만들고 실천해 왔다.
일반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높은 담장 안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글을 써왔다. 30년간 내가 언론에 기고한 기사와 컬럼의 양이 일반 기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나를 보고 ‘변호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고위직 법조인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기자 기질이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맡았던 사건을 모티프로 소설과 수필들을 썼다. 지금도 매일 글을 쓰는 게 나의 생활이다.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화면 속 남자의 말처럼 팔자는 꼬였지만 결국 도망은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나는 운명을 성경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맞는 다양한 재능을 주신다. 물론 많이 줄 수도 있고 적게 줄 수도 있다. 그걸 알고 그 길로 가는 게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내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에게 알려주고 싶다. 남과 같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 대로 가장 쉬운 것, 그러면서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살면 즐겁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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