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가 병이 되는 세상이다! 눈만 뜨면 한편에선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며 유혹
[최보식의언론=신성대 논설위원]

호사다마인가 아니면 분수를 넘어선 때문인가? 대한민국 국대급 셰프인 백종원 씨가 요즘 이런저런 일로 세인들의 입가심으로 연일 씹히고 있다. 암튼 ‘남 잘되는 꼴 못 봐주는’ 민족의 나라에선 잘 나갈수록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우리 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민족도 드물 것이다. 못 먹는 풀이 없다. 그 옛날 기근이 심했던 시절에 습득한 지혜이겠지만, ‘약 아닌 초목이 없다’는 한방의 영향도 클 것이다. 그러면서 잡초 하나하나마다 이건 어디에 좋고 저건 어디에 좋다며 먹어야 할 온갖 이유를 기어이 찾아낸다.
심지어 남들은 독초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풀들도 데쳐서 된장이나 간장 풀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맛나게 먹어치운다. 초근목피만이 아니라 짐승의 내장·뼈·피까지 알뜰하게 먹어치운다. 이런 K-컬처도 새마을운동처럼 아프리카에 전해주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살 만해지자 ‘먹방’이 유행하더니 절에서도 ‘사찰음식’이란 걸 내걸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필자도 절밥을 몇 번 먹은 적은 있지만 저토록 고상한 요리는 아직 한 번도 맛 본 적이 없다.
탐진치(貪嗔癡)를 멀리하라는 불가에서 웬 식탐(食貪)? 수행자는 잘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스스로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고 중생들의 시주로 연명하며 수행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약간 면구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일부 비구니(산스크리트어로 비끄슈니, 즉 ‘걸식하는 여성’)들의 작은 재주부림이라고 여겨 애교로 받아넘길 수도 있겠다만, 절밥이 마치 한국불교의 고매한 전통문화인양 미화시키는 것이 전후 맥락에 두서가 없어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절이 식당업을 할 것도 아니고, 요리를 수행의 방편으로 삼을 일도 아닐 것이다. 결국 힐링 붐을 타고 포교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뜻일 게다. 정히 그러려면 ‘대장금’ 같은 사찰음식에 관한 드라마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가령, 대한제국이 망하자 일제가 조선의 궁중요리법을 훔치기 위해, 영친왕 수발을 핑계로 당대 제일의 셰프인 고종의 수라(?)상궁을 일본으로 데려 가려고 하였다. 이에 그 상궁이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종적을 감췄다.
세월이 흘러, 어느 비구니에게 그 비법이 전승되어 오다가 사찰의 검소한 공양식과 결합하여 드디어 ‘사찰음식(禪食)’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둥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좀 그럴 듯해 보이겠다.
1970년 가을, 스승께서 서울역 바로 밑에 십팔기 도장을 개원했는데 그해 겨울에 필자가 입관하러 찾아갔다. 고등학생 이상만 받는다며 거절당했으나 며칠 후 다시 찾아가 우물쭈물 안 나가고 버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처음으로 중학생을 받아주셨다.
그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연로하신 스님 한 분이 도장에 오셨다. 법명은 기억에 없고 문중에서는 ‘학산당’이라는 불렀다. 원래 이공(李空, 이세종) 선생 문중인이었는데 출가하면 맘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다기에 일찍이 절에 의탁했다고 한다.
불국사 총무를 맡아 열심히 했더니 또 시키더란다. 해서 두 번 총무직을 하고는 “공부하려고 절에 왔는데 자꾸 일만 시킨다”며 내빼버렸다. 한번은 종단에서 수덕사 주지로 임명하자 저녁에 수덕사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나가버렸다. 딱 하루만 주지를 한 것이다.
당시에는 전남 장성의 백양사 조실로 계셨는데, 문중의 장주인 해범 선생이 십팔기도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오셨다. 사흘 동안 계시면서 부질없는 일 다 접고 수행의 길로 가자고 달래셨다. 그 후 한 번 더 올라오셨으나 해범 선생을 설득하지 못하셨다.
해범 선생이 스님을 댁으로 모시고자 해도 한사코 마다하시고는 도장에 묵으셨다. 도장 구석에 연탄 화로 온돌침상을 만들어 놓고 사범이 숙식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범과 함께 주무셨다.
식사도 일체 거절하시고, 때가 되면 물과 함께 밤알 만한 덩어리를 두어 개 드셨다. 선식(仙食)? 필자가 저녁에 운동을 마치고 머뭇거리며 호기심을 보이자 “먹어 볼래?”하시며 한 알을 주셨다. 개떡처럼 거무틱틱하고 딱딱한 덩어리였다.
한 알을 받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고소하기는 했지만 껄끄럽고 약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내심 산삼이라도 들어간 줄 기대했는데 그냥 마른 빵떡 같았다. 필자의 꼴을 보고 짐작하셨는지 “누룽지여! 하나 더 주랴?”라고 하셨다.
치아가 신통찮은 노인네가 누룽지를 먹기 편하게 대충 빻아 뭉친 거였다. 차돌도 바람이 들면 천 리를 날아간다는데, 만약 그날 불로(不老) 선식을 하나 얻어 먹었더라면 혹여 머리 깎아 달라고 따라갔을까? 그랬더라면 지금쯤 어느 산골짜기 움막에서 선약(仙藥) 만든다고 궁상 떨고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일찍부터 삶은 계란이나 식빵 같은 군것으로 아침밥을 대신했었다. 60살 들어서는 끓인 물에 율무 가루, 들깨 가루를 한 숟가락씩 타 죽처럼 만들어, 전자렌지에 구운 마늘 한 통과 함께 먹고 있다. 간혹 참마가루나 콩가루, 미숫가루 등이 생기면 같이 섞는다. 소금과 설탕을 살짝 넣으면 먹을 만하다.
간편식이 곧 선식이다. 가게에서 뭘 사먹는 게 귀찮아서 혼자 멀리 갈 적엔 주머니에 마른 대추 대여섯 개를 넣고 다니다 허기질 때 먹는다. 대추가 없으면 생땅콩을 한 줌 넣고 나간다. 약간 비릿하지만 그런대로 고소하고 껍질 채 먹으니 속이 편하다.
엊그제 통곡물 자연식 전도사 청미래 민형기 원장을 따라 강원도 고성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백세시대를 열어가는 맨발 걷기 운동가들과 여러 건강 전문가들도 함께 했는데, 오가면서 직접 만든 서너 가지 건강 간식도 맛보여주셨다.
오색현미로 만든 누룽지를 받아들고는 아득한 시절 학산당 스님의 누룽지 선식이 생각나 잠시 속으로 웃었다. 유기농인데다 천년초 발효액까지 넣었다 하니 간만에 입이 호강하였다. 선식으로 딱이다. 한 자루 메고 산속 토굴에 들어가 딱 반년만 도(道) 닦다 나왔으면 싶다만 금생에 그런 행운이 주어질지 모르겠다.
암튼 풍요가 병이 되는 세상이다! 눈만 뜨면 한편에선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며 유혹하고, 다른 한편에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다 한들 안 먹어도 그만인 걸 굳이 먹어야겠다고 찾아다닐 부지런함이 내겐 없다. 진귀해야 선식이겠는가? 누룽지 만한 선식이 또 있을까 싶다.
* 신성대 위원은 《혼백론》의 저자로.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1954년 출생. 16세에 해범 김광석 선생에게서 조선의 국기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익힌 이래 40여 년 동안 십팔기의 전승과 보급에 힘써 왔다. 현재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으로 십팔기와 더불어 도인양생공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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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백론》의 저자.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1954년 경남 영산(靈山) 출생하여, 16세에 해범 김광석 선생에게서 조선의 국기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익힌 이래 40여 년 동안 십팔기의 전승과 보급에 힘써 왔다. 현재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으로 십팔기와 더불어 도인양생공을 지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