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 유리문이 열리고, 계엄군보다 조금 더 길게 머물렀다가 가 버린 그의 등장을 또 기다릴 겁니다
[최보식의언론=검비봉 논설위원]

아침 해가 밝았어요. 밖에서 눈 그친 거리에 사람이 다니는 소리,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리는 중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했어요.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가서 눈을 치우고 있었어요.
한 자나 쌓인 눈을 잠깐 사이에 치우고 길을 내주었어요.
서른이 넘은 노처녀의 시간보다, 예순이 넘은 독신녀의 시간은 더 빠르게 간답니다.
여자에게는 누구나 어려서부터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꿈이 있지요. 처녀 때는 백마 탄 왕자님, 남자를 잘못 만나 불운해진 시점에는 구원하러 와줄 흑마 탄 흑기사, 환갑을 넘어서는 초라한 노년에는 조랑말을 타고라도 나타날 다정다감한 노신사, 물론 나귀 잔등에 전대가 넉넉하면 더 없이 좋구요.
사내는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커피와 함께 맛있게 먹더니 외투를 찾아 입고, ‘고맙다, 잘 쉬었다, 다시 오마’ 인사와 함께 문을 열고 나갔어요. 격자 유리문을 빼꼼 연 채로 ‘잘 가시라’ 인사를 했지만 ‘꼭 다시 오세요’라는 말을 그만 빼먹었네요.
나의 한 해는 십 년과 같고, 한 해 겨울은 일 년보다 길고 어둡답니다. 선술집 문을 열고, 탁자를 반짝이게 닦아 놓고, 오뎅통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게 함은 절대적 목표는 아닐지라도, 어둡고 두려운 말년을 의지할 수 있는 가슴 넓은 사내를 기다리는 은근함 때문이지요.
눈이 다시 펑펑 내리는 날,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갠 모습으로 앉아 있을 때, 격자 유리문이 열리고, 계엄군보다 조금 더 길게 머물렀다가 가버린 그의 등장을 또 기다릴 겁니다. 그는 들어서면서 눈을 툭툭 털 것이며, 눈에 젖은 양모 외투는 집안의 온기로 김이 풀풀 나면서 마를 겁니다.
양모 외투가 마르면서 나는 냄새는 그의 냄새입니다. 사내는 아직 동네 모퉁이도 벗어나지 않았을 텐데 벌써 보고 싶어요.
과연 그 분은 다시 저를 찾아오실까요?
일기예보는 오늘 저녁에 또 눈이 온다고 하던데, 이 눈은 내 마음을 서글프게 만드는 눈발이 될 거 같아요.
#계엄군, #선술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