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머리가 쭈뼛해지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어린 시절 먹을 것이 귀할 땐, 시사(묘사) 철만 되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이 산 저 산으로 쫓아다니면서, 할아버지 몫으로 나온 음복과 내 몫으로 나온 떡과 과자를 챙겼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유우~세차!" ‘천자문’이 하늘천따지 가마솥에 누룽지로 안 것처럼 축문(제문)이 '유우~세차.. 블라블라.. 상향'으로 끝나야 먹을 것이 나왔다.
이제 내가 축문(제문)을 짓는 나이가 되어, 자세히 그 의미를 살펴보니, 오호라 여기에도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 한 보따리 숨어 있다.
세상이 소리를 만들 때 모두 다 의미가 있다고 했다. 참새가 짹짹하는 소리, 천둥이 우르르 꽝꽝하는 소리, 인간이 울부짖는 소리, 하물며 인간이 그것도 가장 신성시하는 제사에서 어찌 허튼 소리를 지껄였을까? 하지만 유독 길게 뽑는 '유우~세차', 그러니 지금까지 축문의 대명사로 기억되었다.
유세차(維歲次) 뜻풀이를 하면, 유(維)는 그냥 예령에 지나지 않는 발어사(發語詞)다. 세차(歲次)는 해, 세월을 뜻하는 세(歲)와 순서를 뜻하는 차(次)로 이루어졌으니, 직역을 하면 "에헴 ~, 어언 세월이 흘러 제사가 돌아왔습니다" 하는 해석이 무난하다.
모든 행위에는 때와 장소를 명기하듯 제사도 마찬가지다. 장소는 묘소 앞이니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고, 때는 제사 지내는 날이면 족하였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았다.
오늘을 기준으로 때를 적어 보면, 서기 2024년 11월 15일이 된다. 이 편한 표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여기겠지만,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때'의 표기로 대혼란을 겪게 된다.
그 당시에는 서기(西紀) 대신에 중국 황제가 새로 즉위하면 그 시점부터 그 사람의 이름을 따 연호(年號)를 제정하였고, 그것이 때의 기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숭정(崇禎, 명나라 마지막 황제) 17년은 서기 1644년에 해당한다.
중국 질서 아니 '명나라' 질서로 살았으면 문제가 없었지만, 하늘이 뒤바뀌어 오랑캐 질서로 살아야 하니 사대부들은 청나라 연호를 과감히 거부하고, 1645년부터는 '숭정후(崇禎後)'라는 묘한 연호를 쓰게 된다. 즉 명나라가 망 한 지가 몇 년째냐? 하면서 복수를 다짐했으니 참말로 말만은 가상했다.
예를 들어 숭정후 156년은 1783년이 된다. 시대가 바뀌어 잠시 잠깐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제정하였으나, 곧바로 일본 연호 '명치(明治)'로 대체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니 시골 사대부들의 제사 축문(제문)에도 이 영향을 받아 이 치욕스러운 연호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유(維)~" 하고 '건륭(청나라 연호)', '명치(일본 연호)'를 대충 말하거나 우물우물 말끝을 흐리면서 생략하는 풍토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름지기 모를 때는 많은 것들이 애들 시늉거리가 되어 장난이 되지만, 알면 알수록 머리가 쭈뼛해지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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