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로 신이 들려준 영혼의 교과서라고 적혀 있었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2007년 10월 22일 월요일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이면 도로에 있는 매생이국 식당에서 그 도인을 만났다. 70대 중반의 그는 오랫동안 명상을 해 왔고 정신세계에 대해 공부해 온 분이었다. 그가 내게 자그마한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어느 종교나 명상센터를 가더라도 모두 ‘내 안의 나’가 있다는 걸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어디에도 내 안의 나한테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책이나 사람은 없어요. 이 책도 내 속의 나를 주제로 삼아 쓴 글이에요. 어떻게 그곳으로 안내하는지 한번 읽어보세요.”
‘내 안의 나에게 이르는 길’이란 말이 참 추상적이었다. 추상을 하다가 추상이 되어버린 사람도 많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그냥 책에서 전해 읽는 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자기가 체험을 해 봐야 해요. 근본 경험을 겪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책에서 읽은 걸 달달 외워서 남에게 읊어 주는 꼴 밖에는 안 돼요.”
나는 신비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근본 경험을 했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평생 공부하셨는데 깨달으셨습니까?”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마지막 부분이 안 된 것 같아요. 그게 안 됐으니까 지금까지 말하고 써온 게 모두 허접쓰레기인 거죠. 깨달음이 없는 말이나 글은 장난에 불과하죠.”
“그 깨달음이란 뭐라고 정의하세요?”
“내 안의 내가 있다는 걸 느끼고 아는 게 깨달음이고 그게 신(神) 아니겠어요?”
그는 깨달음을 말로 정의는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 밤 그에게서 받은 책을 들춰 보았다. 새로 산 책이 아니고 그가 오랫동안 보던 책을 건네준 것 같았다.
조셉 배너라는 인물이 받아 적었다는 ‘내 안의 나’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부제로 신이 들려준 영혼의 교과서라고 적혀 있었다. 저자는 거짓된 자아를 벗어던지고 고요해진 마음으로 하늘의 소리를 받아 적었다고 했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지 오래된 사람이었다.
책에는 도인이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페이지마다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 놓고 여백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 책을 보면서 나는 마치 형이 공부하던 참고서를 물려받은 동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밑줄 친 부분에 눈길이 먼저 갔다. 서문에 색연필로 밑줄을 그은 이런 문장이 있었다.
‘지적인 잣대로 이리저리 판단하려는 마음을 잠재우고 귀한 말씀 앞에 당신의 영혼을 초대하십시오’
그래야겠다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첫 장을 펼쳤다.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이리 치닫고 저리 내닫으며 진리와 자유와 행복과 신을 찾아보고 싶지 않았느냐고. 책들과 여러 가르침 속을 헤매고 철학과 종교를 전전하며 참다운 길을 찾기 위해 애쓴 적이 없느냐고. 그 조각들을 얼핏 본 것 같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따라가 붙잡으려고 할 때마다 그것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어지지 않았느냐고.
어떤 모임이나 종교단체의 지도자인 스승을 만나 그가 설파하는 지혜의 말씀이나 업적에 감동을 받고 그 분 안에는 진리가 넘쳐흐른다고 생각 했었지만 나중에 눈을 떠 보니 그는 단지 나와 마찬가지로 온갖 실수와 잘못을 범하는 한 인간에 불과한 걸 발견한 적은 없느냐고. 당신은 내면의 허기에 시달리지 않느냐고. 지치고 허기진 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영혼이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내면의 허기를 느낄 정도로 영적인 존재는 되지 못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고민한 적도 있었다. 책은 내가 했던 생각과 가졌던 감정들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깨어나라고 하고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것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속에 있을 때는 그게 현실이다. 깊은 잠에 빠져 있다면 스스로 어떻게 깰 수 있을까. 부자가 되어 있거나 아름다운 여인과 있는 기분 좋은 단꿈을 꾸고 있으면 깨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 세상이 꿈속이라면 죽음이 잠에서 깨어나는 게 아닐까.
내게 책을 건네준 도인이 저 세상으로 간 지 오래 됐다. 그동안 간간이 그가 준 책을 몇 번 읽었다. 그래도 세월이 20년 가까이 흐르면서 내 방식으로 발견한 사실이 일부 있다.
더러 양심의 소리가 들렸다. 그건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미망과 탐욕에 젖은 나의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게 ‘내 안의 나’일까. 신성한 자아가 따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초월적 존재일까. 그게 성령인가. 그 세미한 음성이 더러 들리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게 내 안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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