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된 남자변기에다가 자기 이름 하나 써서 'Fountain'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전시했던 뒤샹

[최보식의언론=박선영 (사) 물망초 이사장]

'발렌시아가'라는 명품 의류업체에서 구겨진 감자칩 봉투 모양의 가죽지갑을 만들어 200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팔 예정이라는 기사가 뜨자 전세계가 와글와글, 시끌벅적하다.

예쁜 지갑도 아니고, 바삭바삭 누구나 맛있게 집어먹는 감자칩 모양도 아니고, 다 먹고난 다음에 아무 생각없이 푸지직 손아귀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툭 던져넣는 그 우굴쭈굴한 감자칩 봉투 모양으로 수 백 만원짜리 가방을 만들어 판다고?

발렌시아가는 투명 테이프 모양의 팔찌를 만들어 400만원 쯤에 팔기도 했으니 사실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련만, 난리네 ^^

광고성 기사인가? 아무튼 발렌시아가 상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팝아트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구겨진 감자칩 지갑은 뒤샹이 무릎을 칠 일이다.

대량 생산된 남자변기에다가 자기 이름 하나 써서 'Fountain'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전시했던 그 뒤샹, Henri-Robert-Marcel Duchamp 말이다.

뒤샹은 작가 사인으로 자기 이름을 안 쓰고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 주인공인 Mutt 이름을 써서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처음 보는 이 작가의 변기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들이 '이것도 작품이냐?' 라고 분노해서 뒷쪽으로 치워졌지만, 뒤샹의 이 변기 작품은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 변기 작품으로 뒤샹은 본질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껍데기만 빌려오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허영심인 스노비즘(snobbism, 속물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고, 그 비판은 이렇게 전세계적인 사건이 되었다.

피카소 작품이 아닌 뒤샹의 '샘'이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기록된 까닭은 '예술이란 눈으로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고, 그 예술작품을 통해 단지 경험(오줌싸는 행위)을 소환하는 것이어서도 아니며, 그 대상을 사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엔 이렇게 대량 생산해낸 상품도 작품이 되는 세대였다면, 21세기인 요즘은 쓰레기의 존재 자체가 예술의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류업체는 '파타고니아'다. 왜?

21세기 최대의 화두는 환경이고, 환경의 사유대상은 옛날 같은 시커먼 매연이나 헐벗은 산하가 아니라 쓰레기, 바다로까지 진출한 쓰레기다. 파타고니아는 이런 쓰레기, 특히 썩지않는 플라스틱에서 섬유를 뽑아내 옷을 만드는 회사다.

일반 실을 쓰면 싼데, 굳이 비싼 돈과 힘든 과정을 거쳐서 실을 뽑아내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에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것은 뒤샹의 말대로 예술의 개념을 '사유'의 매개체로 보기 때문 아닐까?

물론 그 상표가 유명하고 비싼 옷이니까 자랑도 좀 하고, 시대를 공유한다는 '개념있는 남녀'인 척, 뽐도 좀 낼 수 있는 '21세기적 스노비즘'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환경에 훨씬 더 민감한 건 공지의 사실이니 나는 그렇게 '사유'해 주고 싶다.

파타고니아에 열광하는 세대는 기존세대와는 다른 삶의 방식(modus vivendi)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말이다.

발렌시아가도 파타고니아같은 발상에서 구겨진 감자칩 지갑을 만든 것이라고, 위와같은 관점에서 그렇게 해석해주고 싶다. 개똥철학도 재미니까.

새벽의 무료함을 순식간에 채워준 개똥철학. 그나저나.... 우리 집엔 감자칩이 하나도 없네. 아침부터 감자칩이 급 땡기네.

#발렌시아가, #스노비즘, #뒤샹, #파타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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