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에 이르면 비로소 '일본국적'이 법제화된다
[최보식의언론=한정석 강호논객]

일제시기 '조선민사령(호적법)'과 '국적법'에 대한 해석 불일치가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국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인데, 이 주제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그야말로 일천하고 정립된 것이 없다. 이는 관련 연구자들이 모두 고백, 인정하는 부분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한일합병 당시에도 여전히 조선에서는 '근대 국가'의 개념 정립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고종은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개칭했지만, '대한제국 국민의 자격'에 대한 법령은 없었다. 그것을 대신한 것이 '호적법'과 '민적법'이었다.
이 의미는 조선인들에게는 구한말에서도 '국가(國家)'라는 개념보다 '일가(一家)'라는 개념이 우세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에 '국민'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당연히 '국적'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었다. 자신들은 그냥 '조선 사람'인 것이고 '김씨 일가, 어느 파의 몇 대손' 정도의 개념이 전부였다.
일본으로서는 이 문제를 처리하는데 대단히 신중했다.
일본은 조선에 곧바로 일본 법령을 적용하지 않고 총독부를 통해 '제령'을 시행했는데, 그것은 조선의 관습법 체제를 당분간 인정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호적법과 민적법을 그대로 유지하게 됐고, 일본의 호적법과 절충하는 과정들이 시행된 것이다. 이후 1930년에 이르면 비로소 '일본국적'이 법제화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조선 내부에 관한 규범이었지, 대외적으로 표시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일본으로서는 다른 국가들이 '조선인들의 국적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본국'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고, 일정기에 조선인들도 외국에서 '당신 국적은 어디냐?'고 물으면 '일본'이라고 해야 그 다음의 과정들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승만도 미국 체류시절 자신의 국적을 'Japan'이라고 쓴 것이다. 정치 철학에 정통했던 이승만이 '친일'이어서 그렇게 일본이라고 표기했겠나.
국적이란 언제나 주권국의 소속원임을 표기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대외적으로만 그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내부적 정체성에서 국적은 의미가 없다.
당시 일제는 대만의 경우, 곧바로 일본 국적법을 적용했다. 그것은 대만인들의 관습법 체계를 조선처럼 존중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는 '내선일체'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이라는 개념은 '민족'과 같은 것이었기에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이 다른데 '동일 국민'이라는 개념은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 오늘처럼 간단하게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점을 보면 오히려 당시 일본이 얼마나 신중하고 정교하게 대 조선 식민 정책을 추진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어서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와 합병한다면 일정기의 조선 총독부정책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참고: 이승일. 2005. 조선호적령 제정에 관한 연구. 법사학연구(32), 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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