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한 보름 남짓 집을 비웠던 사이 텃밭에도 봄풀이 무성하다. 한 뺌 남김없이 온통 풀로 뒤덮었다. 씨 뿌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어찌 저리 무성할까.
이 밭은 그냥 버려둔 풀밭이 아니라 우리 밥상을 위한 절실한 텃밭이니 저리 무성한 풀들과 함께 하기는 어려운 일, 이 텃밭을 기계로는 갈지 않기로 했으니 어찌 저 풀들을 걷어낼지 걱정이다.
뽑아도 뽑아도 끊임없이 돋아나는 풀의 그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밭에 풀만 나지않는다면 작물을 가꾸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가 생각하다가 풀이 나지 않는 땅에는 작물 또한 자랄 수 없는 것임을, 저 풀들이 돋아나 이 행성에 푸름이 있고 땅위에서 생명들이 깃들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그러므로 땅에 뿌리한 저 풀들이 땅 위로 움직이는 목숨붙이들보다 이 행성에서 먼저 터잡은 선주민이었음을 그제사 깨닫는다.
무성한 풀 앞에서 망연해 하던 내 게으른 마음 추스르고 두 손을 모아 풀들에 감사하며 축원한다. 봄마다 온 사방 꽃들이 환하게 피어나듯 해마다 이 텃밭에도 풀들이 무성하게 돋아나기를 그렇게 이 행성에 푸름이 길이 이어지기를.
우리집 텃밭은 백 평이 좀 넘기는 하지만 실제로 밭 이랑을 만들어 놓은 것들은 백 평 남짓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면적도 바깥을 떠돌아 다니며 어쩌다 한번씩 들리는 내겐 가꾸기 쉽지 않은 규모다.
며칠을 괭이와 호미로 풀을 뽑다가 오늘은 손위의 동서형님께 긴급 도움을 청하여 함께 잡초매트를 깔았다. 부직포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과 공기는 투과하지만 풀은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텃밭은 이십년 넘게 풀과 작물을 함께 길러왔는데, 그 결과 한번도 제대로 작물을 거두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야생의 풀들이 내가 씨 뿌리거나 심었던 작물보다도 더 무성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을 매지도, 벌레도 잡지않고 나는 '생태영성농법'이라고 하고, 남들은 방치농법이라고 하는 농사법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도 한번 쯤은 그럴듯하게 농사 시늉을 해보자는 생각에 망서리다가 오늘 잡초매트를 밭고랑에 깔았다. 이 매트를 깔아도 땅이 숨쉴 수 있다는 말을 위로로 삼으면서.
그렇다고 내가 이른바 생태영성농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올해만이라도 절로 자라는 풀보다는 내가 심은 작물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텃밭의 풀들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대신 잡초매트를 깔지 않은 곳은 온전히 남겨둘테니 그곳에서 터잡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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