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월은 여느 다른 달들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기다려 왔다는 느낌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2024년 5월 1일 아침의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2024년 5월 1일 아침의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오늘, 마침내 오월, 그 초하룻날의 아침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마침내 오월'이라고 쓴 것은 이 오월은 여느 다른 달들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기다려 왔다는 느낌 때문에 쓴 것이다.

어제는 하루 단식하고 텃밭에 마지막 모종을 내었고 오늘 아침에는 소금물을 마시고 장(腸)의 찌꺼기를 비웠다. 내 나름의 오월 맞이를 하는 셈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한 편의 시상(詩想)을 메모했다. '내 떠날 때'란 제목의 시인데, 이 주제는 오랫동안 이어온 내 시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 오늘 아침에 다시 떠오른 것이다. 

단순화하면 '내가 내 곁의 이들에게 더 이상 감사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거나 축복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곧 내가 떠날 때이다.'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른 것은 이 오월에는 이번 생의 내 소중한 인연들이 그렇게 앞서 떠났다는 그런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월 5일은 박경리 선생의 16주기이다. 박경리 선생은 생전에 몇 번 뵙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선생의 사위인 노겸 김 시인과 그분의 지인을 통해 선생의 사후에도 선생의 유택이 모셔진 통영 산소를 거의 해마다 찾아뵙게 되었다. 선생의 유해를 장지에 모시던 날 마지막까지 남아서 묘소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오월이면 다시 떠오르곤 한다.

5월 8일은 노겸 김영일 시인의 2주기이다.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김지하라고 불렸던 그 이름이 묘비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생전에 당신의 이름을 김지하가 아닌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 어둠의 지하에서 벗어나 볕살 좋은 땅 위의 '한송이 환한 꽃'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내가 형님으로 모셨던 그는 특별히 내가 쓴 책의 발문 형식을 빌려 당신의 소망을 간곡히 일렀다. 내가 김 시인을 노겸 형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5월 19일은 우졸당 장태원 형님의 1주기이다, 70년대, 척박하고 암울했던 그 시대에 농민운동의 동지로 만나서 45년을 넘게 도반으로, 형님으로 모시고 함께했던 분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나라, 이 땅의 주요한 현장에 언제나 함께 참여했고 그 주제들에 고민을 함께해 왔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싶다.

그리고 5월 22일은 무위당 선생님의 30주기이다. 이번 생에서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의 스승이라고 고백했던 분이다. 

이 분들 모두 이번 생의 고맙고 귀하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아침에 오월에 유명을 달리하신 이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릿하고 따뜻하고 그리워진다.

그래서 아침의 시 메모의 마지막을 이렇게 썼다.

'그렇게 떠난 뒤/ 마지막 숨결을 멈춘 내 얼굴엔 고요한 미소 한 자락이/ 나를 보낸 이들의 가슴엔/ 따뜻함과 그리움만이 남아있기를//‘

연둣빛으로 싱그럽던 산색이 오월의 아침엔 진초록빛으로 짙어졌다. 오월에 피는 꽃들에 유난히 하얗게 피는 까닭을 생각한다.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숲마루재 근처 불두화
숲마루재 근처 불두화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숲마루재 근처 하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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