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의 품격] 대통령 전용기에 주요 장관, 기자, 문인, 연예인 등 공식 비공식 수행원들을 빈자리 하나 남기지 않고 만석으로 채워...

어제 러시아 당국이 지난 23일 러시아 서부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에서 바그너그룹 전용기가 추락해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사망했음을 공식 확인하였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별난 재미를 보여줬던 프리고진의 무장반란극이 일단락되었다. 보다 화끈한 극적 전개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운 결말이라 하겠다.

푸틴이 누구던가? 고지능 야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KGB 출신으로 이미 정적과 배신자 암살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중상이 병적일 정도로 심하지 않아 앓는다는 표현은 적당치 않지만 그는 야스버거 증후군 특유의 집중적이면서 집요하고, 치밀하게 계산적이며,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혈한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감히 저를 길러준 주인의 뒤꿈치를 물다니! 모두가 예상한대로 프리고진의 죽음에 놀라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간동안이나마 푸틴과 프리고진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해하던 벨라루스 루카센코 대통령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속으로 엄청 섬뜩했을 것이다.

역시 프리고진은 푸틴의 사냥개에 불과했다. 수가 낮아도 한참 낮았다. 반란 이후에도 러시아를 활개치고 다닌 걸 보면 나름 자신의 생명을 담보할 플랜B를 확실하게 준비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순간의 방심으로 명을 단축하고 말았다. 푸틴은 프리고진 제거 다음 수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고진의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그날 바그너 수뇌부들을 함께 대동하고 움직인 것이다. 나름 꾀를 내어 비행기를 두 대에 나눠 탔지만 프리고진과 2인자인 드미트리 우트킨(바그너그룹 공동 설립자)과 해당 비행기에 함께 탑승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흔히 회자되기를 코카콜라 제조 비법을 알고 있는 몇 명의 특별한 직원들은 평소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은 물론 휴가조차 같은 시기에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프리고진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나 보다. 그렇게 해서 플랜B도 함께 날아가고 말았다.

만약 그날 프리고진과 우트킨이 비행기를 따로 탔더라면? 그럼 둘 다 폭파시켰을까? 설마 푸틴이 그런 어리석은 수를 쓸까? 두 비행기가 같은 장소에서 한 날 동시에 추락했다면 그걸 어찌 우연이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북한의 김정남 암살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말 가슈끄지 기자 암살을 연이은 푸틴의 정적과 배신자들을 죽음과 비교해보면 그 실력 차이를 짐작하겠다.

그처럼 남달리 특출한 재주 하나로 거대 제국의 절대 권력을 거머쥐고 장기집권하고 있는 푸틴이지만 그로 인한 한계 또한 어쩔 수 없음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가 만약 군 출신이었다면 분명 스탈린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았겠다.

아무려나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나든 러시아가 군사력을 회복하려면 20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또 열심히 가스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팔아야 한다. 덕분에 그 20년 동안 세계는 러시아의 무궁한 자원을 아주 값싸게 사다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서방 자유진영이 우크라이나에 아낌없이 무기를 지원해줘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1983109일 당시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북한이 저지른 폭탄 테러로 인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서석준, 외무부장관 이범석, 상공부장관 김동휘, 동자부장관 서상철,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심상우,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김재익, 재무부차관 이기욱, 주 버마대사 이계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하동선, 농수산부차관 강인희, 과학기술처차관 김용한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에 폭발하는 바람에 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대한민국은 유능한 인재들을 한꺼번에 잃는 바람에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했을 것이고 전두환 대통령도 보다 많은 업적을 쌓았을 것이다.

그 후 대한민국의 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때마다 대통령 전용기에 주요 장관, 기자, 문인, 연예인 등 공식 비공식 수행원들을 빈자리 하나 남기지 않고 만석으로 채웠는데 어떤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대기업 총수들까지 거느리고 넘어갔었다. 무지한 건지, 간이 큰 건지, 철이 없는 건지 참 어이없었다.

지금도 그 관행은 그대로다. 대한민국은 이제 가난한 후진국이 아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이다. 그렇다고 허세부릴 일도 아니다. 대형 전용기가 대통령 체통을 세워주고 국가 위상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 좌석을 꽉꽉 채워서 여비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하겠다는 갸륵한 애국심 이제 그만 발휘하자.

아웅산묘소폭파 사건의 기억은 희미해졌다손 치더라도 세월호 침몰이나 이태원 사고를 보면서 뭣 좀 느낌이 없는가? 대통령 전용기도 중형으로 줄이고, 기자 동행도 공동취재단으로 단출하게 꾸리면 촌스러운가? 굳이 대기업 총수들을 대동해야겠다면 그들은 각자 따로 개인 전용기 타고 가서 현지에서 합류하는 게 격에 맞지 않은가?

 

 

 

《혼백론》의 저자.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1954년 경남 영산(靈山) 출생하여, 16세에 해범 김광석 선생에게서 조선의 국기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익힌 이래 40여 년 동안 십팔기의 전승과 보급에 힘써 왔다. 현재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으로 십팔기와 더불어 도인양생공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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