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이 ‘지연된 복수’를 실행해 결국 영화 ‘대부’와 같은 결말을 냈다
최영훈 전 동아일보 국장

“크렘린궁이 ‘지연된 복수’를 실행해 결국 영화 ‘대부’와 같은 결말을 냈다”(외신)
50년 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대부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마피아는 상대를 죽이기 전 극적으로 용서하는 듯한 연기를 한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마피아의 총두목인가? 푸틴은 6월 무장반란을 일으킨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대장을 결국 응징했다. 전세계가 보라는 듯, ‘공개 처형’을 감행한 거다.
24일 오후 6시경 프리고진 소유 레거시 제트기가 3만 피트(9144m) 상공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비행 30분만에 모스크바 근처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 주변에서 갑자기 추락했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옛 소련의 철권통치자 스탈린의 말이다. ‘리테르노예(liternoye)’ 살인, 자연사나 자살로 위장한 정적 제거를 뜻한다. 푸틴 눈밖에 나거나, 정적이 되면 골로 간다. 용병 두목 프리고진도 이 리스트에 들어갔다.
CNN이 프리고진 전용기 추락을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기 위해 전용기‘엠브라에르 레거시 600’에 올랐다. 이날 오후 6시11분경 위치 정보가 끊겼다. 항공기는 9분 여 동안, ‘최후의 흔적'을 남겼다. “순항 고도에서 끝까지 수신된 32초의 데이터”(FlightRadar24)도 공개됐다. 데이터 전송이 중단되기 직전, 항공기는 분당 8000피트(약 2.4㎞)로 급하강 했다.
프리고진이 탄 비행기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이었다.
“미사일에 맞아 날개 한쪽을 잃은 뒤 추락했다.”(WSJ)
이 사고로 프리고진과 최측근 드미트리 우트킨, 승무원 3명 등 10명 전원이 숨을 거뒀다. 시신 10구는 모두 수습됐으며, 유전자 분석 중이다. 사고 현장에선 그의 휴대전화도 발견됐다. 러시아는 사망을 공식 확인해줬다.
레스토랑을 경영한 프리고진은 KGB 관료 푸틴과 인연을 맺었다. 푸틴 집권 후 크렘린궁의 행사를 도맡아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2014년 바그너그룹을 창설, 푸틴을 대신해 러시아 관련 분쟁들에 개입해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때도 전면에 나섰다.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한 공도 세웠다. 군부 수뇌와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6월 23~24일 마침내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 용병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했다. 하루도 안돼 모스크바 200㎞ 내로 진입했다.
그러나 돌연 협상을 통해 반란을 중단했다 푸틴 사주를 받은 듯, 벨라루스 대통령의 농간에 넘어간 듯하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가는 대신 그와 용병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맹약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 프리고진은 명줄이 끊기고 말았다. 그 전에 프리고진은 푸틴의 암살자에게 당할까봐 '창문 없는 호텔방'에 은신해 있었다고 한다.
푸틴 23년 통치 기간 중, 수많은 정적이 사라졌다. 푸틴은 눈엣가시는 공개 처단하기도 했다.
‘반푸틴’ 정적이나 비판 언론인은 하나 같이 자택 욕조 등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푸틴이 배후로 의심받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물증만 없지, 심증은 확고하다.
푸틴은 프로퍼갠더를 위해선 공개 숙청도 했다. 옐친 정권 시절 검은 부를 쌓은 ‘올리가르히’(재벌)가 그랬다. 불법 편법으로 부를 일군 재벌은 비밀경찰을 동원, 감옥에 가두거나 밖으로 쫓아냈다. 쌓은 재력으로 대권을 넘볼까봐 그랬다고 한다. 서민 불만을 다독이는 효과까지 일석이조였다.
석유기업 ‘유코스’의 오너인 호도르콥스키는 탈세로 2003년 체포돼 10년 감옥살이했다. 석방 뒤 영국으로 망명해 푸틴을 비판하고,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을 편들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와 맞서려면, 악마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적들의 의문사는 다채롭게 이뤄졌다. 베레좁스키는 10년 전, 런던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러시아 최대 석유업체 ‘루크오일’의 마가노프 회장은 모스크바 병원에서 추락사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다 생을 하직했다.
전쟁 후, 비판 인물들의 의문사가 잇달았다. 쿠체렌코 차관은 쿠바에서 돌아가던 중 숨졌다. 독립언론 매체에 푸틴의 침공을 비난해서였다.
인권단체 OVD-인포는 최근 1년 간 1만9718명이 체포됐고, 58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밝혔다. CNN은 작년에 의문사 당한 사업가만 10 여명이라고 보도했다.
'푸틴의 홍차’를 조심하라는 말이 나돈다. 정적들이 숨지거나 숨질 뻔한 위기 순간엔 늘 홍차가 옆에 있었다. FSB 출신 리트비넨코는 런던 호텔에서 홍차를 마신 뒤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뒀다. 방사선 물질인 폴로늄 210이 녹아 있었다.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25만 배 강한 물질이다.
체첸 학살을 고발한 언론인 폴릿콥스카야도 홍차를 마신 뒤 중태였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2년 뒤 자택 인근에서 괴한 총격으로 숨졌다.
최대 정적으로 꼽힌 나발니 옆에도 홍차가 있었다. 3년 전,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차를 마신 뒤 국내선에 탔다가 그만 의식을 잃고 만다. 독일로 긴급 이송돼 치료받아 목숨을 건졌다. 독일 정부는 독극물 노비초크가 쓰였다고 발표했다. 나발니는 FSB 요원을 추궁, 노비초크를 속옷에 묻혀 놓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비초크는 소련 때 개발된 화학무기로 호흡 정지, 장기 손상, 근육 경련을 일으킨다. 노비초크 중독과 심장마비는 구별이 힘들다. 가루를 액체로 만들 수 있어, 추적이 쉽지 않다.
숨진 리트비넨코는 KGB 후신 FSB가 운영한 독성물질 연구소를 폭로한 바 있다. 1921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의 ‘랩X 독극물 실험실’을 설립한 바 있다. 정적제거 용 독극물 개발이 100년을 넘었다.
푸틴은 독재자 스탈린 향수에 젖어 있다. 그의 조부가 스탈린 요리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스탈린 시대를 친근하게 여겼다. 스탈린도 1930년 대, 우크라이나를 침략, 곡물을 압수해 600만 명 넘게 숨지게 했다. 푸틴은 FSB를 국내 정치에 기차게 이용한다.
정보기관들은 푸틴 사조직으로 변질돼 있다. 스탈린 폭압시대로 회귀는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으로 내부 비판여론을 강력히 단속한다. '스탈린의 감시 사회’로의 퇴행을 꾀한 푸틴의 공포통치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푸틴의 입지는 결코 탄탄하지 못한 편이다.
쿠데타 진압 뒤 실각한 고르바초프나 옐친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서방언론은 예측했다. 그런 예측을 비웃듯, 프리고진부터 잠재웠다.
푸틴의 명줄은 조금 더 길어질 수 있을 거다. 그래 본들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나는 본다. 23년 세월을 버텼지만 한계에 도달했다. 그가 없앤 프리고진 무장반란이 말한다. 절대권력은 부패를 향해 마구 내달린다. 그래서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푸틴의 명줄이 끊기면, 시진핑 김정은에게로 도미노가 벌어질까? 독재자를 겨냥한 친위 쿠데타가 벌어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