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존재하는 근본 원인을 두고 ‘사회적 합의’ 또한 신기루이다. 사회적 합의란 대부분 이해집단의 승리가 아니면 다수 독재의 합리화로 귀결된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장애인단체 전장연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일까? 공공재를 점령해서 폭력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은 종종 논란이 된다. ‘인간의 기본권(Human Rights)’이라는 우리의 인식은 전장연의 사례처럼 현실에서 판단이 어려운 난감한 상황을 직면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공권력이 개입했을 때 어느 편을 들게 되고 자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불편을 주어야 그들의 ‘집회의 권리’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되는지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면 이것이 천부적 권리, 즉 태어날 때부터 갖는 신성한 권리라는 개념은 사실은 허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모순적 상황이 일어나는가? 전장연을 옹호하는 ‘집회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이라는 입장은 우리가 어느 쪽이 옳다고 기본권 논쟁으로는 결정될 수 없는 갈등의 사안이다.
자유주의자라고 전장연의 편을 들고 싶겠지만, 출근 길을 저지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권리와 지하철의 영업 손실 등을 무시한다면 자유주의의 입장이 현실성도 없는 관념적 근본주의라는 곤궁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Murray Rothbard는 1970년에 출간한 ‘Power and Market(권력과 시장)’이라는 책에서 이미 기본권 개념의 한계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전장연의 집회가 기본권의 행사냐 아니냐는 올바른 질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어떤 권리를 행사할 때 중요한 것은 ‘어디서’ 행사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자신의 집이나 사적 공간에서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의 영업장에서 소란을 피우며 욕설을 해대는 것은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용인되지 않는다.
즉 어떤 권리든 장소(재산권)과 동떨어진 행사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파업 중 작업장 점거는 허용되지 않는 집회의 자유다. 우리나라만 이를 허용해서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주주들에게 안기고 있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자주 일고 있다. 하지만 이들 플랫폼은 그들의 ‘사유재산’이다. 이들은 이 플랫폼을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 사유재산의 주인들은 자신의 영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 제제를 가하고 재산권을 보호할 권리가 있고 그것이 주주에 대한 책임이다.
그럼 공공장소에서의 집회의 자유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위를 하는 사람도 국민이고,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도 국민이고 다 세금을 내고 공공장소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여전히 공공장소 시위와 관련해 기본권의 한계에 대한 판정은 권력의 자의적 판단 또는 국민의 지지 여부에 따라 자의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Rothbard의 해결책은 과격한 것이다. 도로를 사유재산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의 주인은 시위꾼들이 더 많은 돈을 내면 시위하는 것을 용인하고, 도로의 통행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면 시위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시위도 경매를 통해 장소를 주인에게 임대하면 된다.
정부 공권력의 자의적 권리 침해가 싫으면 공공재를 줄여서 재산권 행사의 주체를 분명히 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주인 없는 공기업과 산하 단체, 그리고 공기업도 아닌데 주인이 없는 ‘국민 기업’의 최고 경영자 임명마다 논란이 되는 이유가 바로 재산권을 행사할 주체가 없는 조직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많은 도덕적 해이는 바로 ‘재산권 부재(不在)’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의 축소는 정부의 확대가 아니라 사적 재산권 즉 민간의 확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주인이 분명하면 애매한 상황이 축소된다.
갈등이 존재하는 근본 원인을 두고 ‘사회적 합의’ 또한 신기루이다. 사회적 합의란 대부분 이해집단의 승리가 아니면 다수 독재의 합리화로 귀결된다. 기본권과 재산권의 관계를 규명하지 않으면, 기본권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참고 자료: the Freedom Convoy Debate Demonstrates Why a ‘Right to Free Speech’ Makes No Sense (FEE.Org, 202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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