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교체’를 외치는데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 물론 괜찮은 정치인이 아직도 없진 않지만 전체적인 질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난 좀 특이하게 대학 4년 중 3년 이상을 총학생회에 몸담았다. 2학년때인 1986년부터 88년 5월까지. 1990년 11월 제대 후 1년간 휴학할 때도 동아리 활동하며 학교서 숙식했다. 1992년 4학년 졸업반 때도 총학 일을 했다.
똑똑해서가 아니고 여러 잡기(雜技)에 능해 쓰임새가 많아 날 필요로 했고, 나도 학비가 없어 장학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학생회와 동아리방에서 보냈다. 그래서 1985년 말부터 92년까지 학생운동 급변기에 장장 7년간 학생운동 변화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1986년 즈음만 해도 쟁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총학생회장 후보감들이 많았다. 하지만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총학생회장 시킬만한 인물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총학생회 집행부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87년 이후 학생운동이 변화하지 못하고 ‘주사파’만 강화되면서 서서히 몰락해가자 인물도 점차 사라져갔다.
똑똑한 이들이 더 이상 학생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 92년 모교 부경총련 출범식에서 한총련 의장 '옹립' 행위를 보면서 옆에서 같이 보던 학생과 선생에게 학생운동 5년내 망한다 말했다. 처음부터 주체사상에 거부감을 느꼈고 이런 이념으로 학생운동이 지탱하기 어렵다 봤다. 범(汎) PD계라 불리우는 계열 학생운동 조직들의 유인물들을 보며 그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할 정도로 우리 쪽은 무지했다.
특히 91년말 총학생회장 선거 기획을 하며 북한 단파방송의 정리된 '말씀자료'를 근거로 겨우 애국애족이나 내세우는 우리와 타 정파의 주장을 비교하며 부끄럽고 주눅이 들기까지 했다. 주사파는 강화되고 취직이 안 되니, 점차 학생운동도 새로운 비전과 전망을 찾지 못해 쇠락하고 인물도 사라져갔다. 나중엔 말도 안되는 친구들을 총학생회장에 앉혔다.
나는 1995년부터 28년을 정치판에 머물고 있다. 절반은 부산에서, 절반은 여의도에서. 지난 약 30년간 인물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끼고 있다. 특히 부산은 1996년 부산의 정치인들과 지금 정치인들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대통령 3명 국회의장 3명을 배출한 ‘정치 1번지’였다. 이는 비단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지난 대선 여야 후보의 상태를 한번 보라.
‘정치교체’를 외치는데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 물론 괜찮은 정치인이 아직도 없진 않지만 전체적인 질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극단적 대립만 하는 정치판에 더 이상 인재들이 오지 않는다. 김남국, 최강욱을 비롯해 하루가 멀다 않고 설쳐대는 민주당 비례대표들의 면면을 보라. 국민힘은 그나마 무능한 의원들이 일을 아예 안해 겉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진영화가 만든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연일 쏟아내는 우리 국회 풍경이다.
쇠락의 징후는 인물이 줄어드는 데서 포착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어릴 적부터 키워지지 않고 공급이 안 되니 계속 인기투표로 간다. 증오를 키운 팽배한 정치적 상업주의 공간에서 생각없는 유권자들은 백화점 진열대에서 물건 고르듯 자신을 대변할 대의자를 뽑는다. 그러니 극소수의 팬덤으로 정치가 좌우된다. 공급량이 줄어드니 질도 떨어진다. 27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또 쇠락의 징후는 국가 목표가 없어지는 데서도 포착된다. 정당도 정강만 있지 거기에 걸맞는 목표가 없다. 김대중 정권 이후 지난 27년간 국가의 목표가 명확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노무현은 자기 신념에 빠져 목표를 잘못 설정했고, 이명박은 녹색성장이니 동반성장이니 목표는 명확했으나 실행이 미흡했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은 방향없이 부유하고 있다.
반도체나 AI 인력 부족 사태는 목표없는 국가의 결과다. 노무현 정권은 그나마 이를 인지하고 과학기술 체계와 인력 준비를 시도했으나 수준이 안되는 국회에 막혔다. 연일 지속되는 이념적 정쟁 속에 국가백년 대계가 가로막혔던 것이다.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이든, 드골의 '공화국 사수'이든, 에를란데르의 '국민의 집'이든 어쨌든 온 국민이 합심할 수 있는 국가적 목표가 있어야 된다.
1993년 대학 졸업 이후 지속적인 고민이 대한민국을 묶어낼 수 있는 공유가치가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고대 아테네도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국가를 통합했고, 심지어 조선도 ‘왕도정치’의 목표라도 있었다. 영원할 순 없지만 한 집단 오랫동안 지속되려면 정신적 합일성이 있어야 하고 그게 국가의 비전과 목표로 구현돼야 한다. 극단적 양극화도, 저출산도, 세대갈등도 얼 빠진 대한민국의 결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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