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은 자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려 들지 말고 양심에 따라 잘못된 것을 고치고 거울로 삼아 생각과 행동을 고치는 것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장석영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명나라의 대유(大儒) 왕양명(王陽明)은 “산속의 도둑을 쳐서 이기는 것은 쉽지만, 마음속의 도둑은 이기기가 어렵다(山中之賊易破 心中之賊難破)”고 했다. 인간의 수양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갈파한 명언이다.
오래 전에 심심풀이로 청계산 자락에 있는 지인이 운영하는 농원의 자투리땅을 빌려 텃밭을 가꾼 일이 있었다. 대학에서 은퇴한 뒤라지만 현직에 있을 때보다도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봄에 채소 모종을 사다가 심어놓고는 거의 한 달 만에야 찾아갔다.
밭에 도착해 보니 웬걸 채소보다 잡초가 무성해 어느 게 채소인지 분간 못 할 정도였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잡초를 뽑아내고 농막에 앉아 쉬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밭에 김을 매지 않아 이렇게 풀밭이 됐으니 내 마음도 김을 매지 않으면 이처럼 악의 잡초들만 무성해지겠지?” 나는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마음의 김도 자주 매주자고 다짐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렇다. 내 마음 속에 있을 크고 작은 악과 싸워 이기는 거야.” 거짓과 탐욕, 교만과 질투, 이기심과 어리석음과 같은 것들과 싸워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집의 서재에 가득한 위인들의 이야기들을 찾아 다시 읽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심중의 도둑들과 용감하게 싸워서 이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읽어 본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惡靈)‘이었다. 여기서 그는 말한다. “인생에는 어려운 일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유명한 작가 중에서 그만큼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깊이 파헤친 작가도 없다고 본다. ’죄와 벌‘도 그렇고, ’까라마조프 형제들‘도 그렇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 이것은 인간 양심의 요구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한 윤동주(尹東柱) 시인의 말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고백. 이것이 순수한 심정이다.
거짓말을 하면 괴롭다. 우선 상대방을 대하기 괴롭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괴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때로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의지력이 약해서든, 주위 사정 때문에서든, 아니면 살아가기 위해서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데 탐욕과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그게 악(惡)인 줄을 알면서도 작심하고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의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해서 자기 자신도 언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무괴아심(無愧我心)’이란 말이 있다. 내 마음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높은 소원이다. 그렇다면 ‘부끄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한자로는 부끄러워할 치(恥)다. 치(恥)자는 귀와 마음이 결합 된 글자다. 따라서 부끄럽다는 말은 귀와 마음이 결합하여 마음에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양심이 귀를 빨갛게 한다거나 패배의 상징으로 귀를 거둬들었기 때문에 귀를 잃는 것은 치욕(恥辱)이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부끄러움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에 부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귀가 빨개지듯 모른 척 감춘다는 것은 자신을 속일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는 ‘위엔밍위엔(圓明園)’이라는 청(淸)대 최대 황실의 이궁(離宮)이 있었다. 강희(康熙)연간 1709년부터 건축되어 건륭제(乾隆帝)까지 150여년에 걸쳐 조성됐는데 불행히도 1860년 영·불 연합군에 의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은 폐허가 된 이곳을 그대로 존치하고 그 뒤편에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고, 중화를 다시 일으켜 떨치자(不忘國恥,振興中華)’ 라는 큰 간판을 내걸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뉴욕의 한복판에는 ‘9.11 테러 추모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테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을 추모하는 공원이다.
이 두 곳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꺼이 내어놓고 무엇이 진실이며, 이것들을 통해 후대(後代)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인간다움은 자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려 들지 말고 양심에 따라 잘못된 것을 고치고 거울로 삼아 생각과 행동을 고치는 것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면서 인간 수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것(過則勿憚改)’. 이것이 삶의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