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마다 비슷비슷한 기사나 칼럼들로 넘쳐납니다. 실례되는 표현일지 모르나 그 글이 그 글입니다. 신문을 펼쳐서 제목만 보고 지나가는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읽어봐도 역시 빤한 내용입니다.

같은 현안에 대해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은 한두 명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 현실은 숱한 기자들이 거의 똑같은 내용을 반복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언론사 제호를 가리면 신문마다 거의 구별이 안 됩니다. 후배 기자들이 남들과 같은 글을 왜 쓰고 또 쓰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의문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 코너는 비슷한 글 더미 속에서 색다른 시선·내용·문체의 글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그 글을 필사해보는 게 좋은 글 쓰는 지름길이라고도 합니다.

 

순전히 제 관점에서 일주일 한두 번 골라보겠습니다. 제가 고른 글이 왜 좋은 글인지 해설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제 안목에 동의하지 않아도 됩니다.

 

<승자는 기품 있고 패자는 의연했다> 조선일보 이하원 도쿄특파원(330)

 

지난주 한국계 교토국제고의 고시엔(甲子園) 시합을 두 차례 현장 취재했다. 처음 가 본 고시엔 구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승패가 확정된 후 3분간의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지난 24일 교토국제고가 54로 승리했을 때다. 고시엔 첫 승리를 거둔 이 학교 선수들은 과도하게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환희에 찬 얼굴에 손을 높이 들어 올린 것이 전부였다.

 

시합 종료 사이렌에 맞춰 승리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전통에 따라 홈 플레이트 부근에 전광판을 바라보며 일자(一字)로 섰다. 그러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패한 시바타(柴田)고 선수들은 일루 측에 부동자세로 서서 교토국제고 교가를 들었다. 승자는 과도하게 기뻐하지 않았고, 패자는 의연하게 상대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는 게 돋보였다.

 

비슷한 장면을 27일 교토국제고의 16강전에서 다시 목격했다. 교토국제고는 9회까지 42로 이기다가 도카이다이스가오(東海大菅生)고에 54로 역전패했다. 그것도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에서 역전타를 맞았다. 스트라이크 하나만 더 들어갔으면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패한 게 아쉽고도 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그 감정을 억눌렀다. 이번엔 자신들이 삼루 측에 도열, 상대 팀의 교가를 들음으로써 승리를 축하해줬다. 퇴장할 때는 모자를 벗어서 대회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어린 선수들의 의식(儀式)에서 장엄함이 느껴졌다. 가족을 잃은 상가(喪家)에서도 오열하지 않는 일본 문화가 오버랩됐다. 미국에서 알게 된 스포츠 격언을 떠올렸다. “기품(氣品) 있게 이기고, 질 때는 영예롭게 진다(win with class, lose with honor).”

 

교토국제고의 박경수 교장은 승리했다고 상대 팀을 자극하지 않고, 졌다고 분한 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고시엔 전통이자 교육이라고 설명해줬다. 승리 후 과도하게 그 기분을 표출한 팀이 경고받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

 

승패가 결정되면 미련 없이 결과에 승복하는 일본 문화는 경기장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박 교장은 2716강전에 앞서 교토국제고에 아깝게 진 시바타고의 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시바타고의 교장은 오늘 열심히 교토국제고 선수들을 응원하겠다. 잘 싸워달라고 격려했다. 이날 교토국제고가 석패한 후, 재일교포 응원단이 주차장에서 상대 팀 선수들을 만났다. 대부분 일본에서 태어난 교포들은 이들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흔들어줬다. 도카이다이스가오고 선수들은 깊숙이 고개 숙여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시엔은 선수들만 기품을 지키고 절도 있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응원단은 엄격한 규정하에 움직였다. 응원 버스는 고시엔 구장 바로 앞에 정차하거나 주차할 수 없었다. 1떨어진 주차장에 모든 응원단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곳에 단체 버스가 흩어져서 입장하는 것도 금지됐다. 같은 학교의 버스는 반드시 열을 맞춰서 한 번에 입장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고시엔 구장 주변의 혼란을 막는 것은 물론, 대형 버스들이 마구 다녀 교통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을 방지했다.

 

응원단은 고시엔 구장에 개별 입장할 수도 없었다. 안내원의 깃발하에 2열로 줄을 맞춰서 가야 했다. 1000명에 이르는 응원단이 수백m의 줄을 맞춰 이동하는 장면은 해외여행 당시 마주친 일본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행렬이 이동하는 동안 동네 자원봉사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엄격하게 통제했다.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열을 벗어나지 말아달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자전거를 탄 주민들을 만나면 반드시 이들이 먼저 가도록 배려했다.

 

일본인이 종교처럼 여기는 고시엔은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한국 사회가 전체주의적, 후진적이라고 무시하는 일본의 전통과 질서는 고시엔을 통해서도 재생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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