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섹' 노인의 비결은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사람들은 나이 들면서 말이 많아지고 혼자 말을 일방적으로 하려 한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었던 70대쯤 돼 보이는 노인들의 대화 내용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응, 항상 휴일 같이 지내, 휴일. 휴일이 따로 없지. 일상이 휴일이지. 걷기도 하고, 뚝섬에도 가고… 일상이 바빠. 근데 말이야 얼마 전에 00을 만났는데, 그 친구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게 영 딱하더라. 나이 들어서 할 일이 없으면 안 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 친구 왜 그리 됐는지. 쯧쯧. 옛날엔 그 친구도 잘 나갔잖아. 근데 지금은 영 기운이 없어졌어. 나도 옛날에 한 가닥 했지만 아직 팔팔하잖아. 노후는 이렇게 보내야 해. 엊그제는 또 아들네에 갔는데… 어쩌구저쩌구.”
얘기가 끝날 줄 모른다. 옆에서 있던 내가 슬쩍 한번 쳐다본다. 눈치도 없이 혼자서 떠드는 모습이 전형적인 노인 같기도 하고, ‘이런 모습이 젊은 사람들한테 존경받지 못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여성 노인들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왜 사람들이 눈치 없고 염치없이 말이 많아질까. 그리고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혼잣말을 그렇게 많이 하려 할까?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인정할 테고, 나이 든 사람들도 본인이 그렇게 하든 하지 않든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나이 든 사람들은 생활에서 확실히 느끼는 부분은 옛날 배웠거나 기억했던 내용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최신 새로운 정보 처리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즉, 젊었을 때는 외부 정보나 최신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확히 기억을 하지만, 노년기에는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뚝 떨어져서 대화 내용이 과거 경험이나 개인 서사로 바뀔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전두엽 기능이 저하한다. 전두엽은 충동을 억제하고 대화의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필터링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기능의 저하로 인해 불필요한 정보나 뇌리를 스치는 본인의 생각까지 모두 말로 뱉는 장황한 화법(Off-Target Verbosity)이 나타나기 쉽게 된다.
더욱이 대화 중에는 상대방의 말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내 생각을 정리해야 정상적인 대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노화로 인해 이 작업 기억 용량이 줄어들면서 상대방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주고받는 티키타카 대화가 벅차진다. 결국 가장 말하기 쉽고 익숙한 자신의 경험 위주로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함께 은퇴나 신체적 노화 등으로 인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잃어가면서 불안을 느끼기 쉽다. 이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제, 즉 자신의 무용담이나 경험에 집중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과 효능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특이하게도 부정 감정보다는 긍정 감정을 유지하려는 ‘정서 선택성’ 경향이 뚜렷해진다. 그래서 힘들었던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다. 자기 합리화 과정이 아니라 정서 안정 전략인 셈이다.
사회적 네트워크의 축소도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한다. 일상에서 만성적인 외로움을 느낄 때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그동안 억눌렸던 소통의 갈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말이 길어지는 경우를 흔히 경험할 수 있다.
대략 실생활에서 우리가 목격하거나 경험한 노인들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성격이 변해서라기보다는 나이 들면서 인지‧사회‧정서적 구조가 함께 바뀌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결과이다. 이를 과학적으로 보면, 뇌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발달 과정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한다.
먼저, 린 해셔(Lynn Hasher)와 로즈 잭스(Rose Zacks)의 ‘억제 결핍 이론(Inhibitory Defici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뇌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나 떠오르는 잡념을 걸러내는 인지적 억제 능력이 저하된다. 이로 인해 대화의 원래 주제에서 벗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신의 과거 기억을 여과 없이 발화하는 장광설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은 입증됐다.
심리적 요인으로는 스탠포드대학의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 SST)’이 있다. 이는 인간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에 따라 사회적 관계, 정서, 목표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는 동기 이론이다.
쉽게 말해, 나이가 들어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고 지각할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기보다 정서적 의미를 찾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즉,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 성취를 타인에게 공유하고 인정받음으로써 정서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려는 논리적 기제가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반대로 실행하면 된다. 먼저, 지속적인 뇌 가소성 훈련을 하면 된다. 전두엽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뇌 회로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외국어 말하기와 같이 새로운 언어 체계를 체화하거나, 지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뇌에 노출시키는 것이 인지 저하와 충동 조절 약화를 방지하는 매우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이다.
둘째로, 대화 지분 모니터링을 하면 좋다. ‘WAIT(Why Am I Talking?) 기법’이라고 한다. 대화의 목적이 상대방과의 정보 교환인지, 단순한 자기 과시인지 스스로 논리적으로 묻고, 자신의 발언량이 전체 대화의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체크하면서 스스로 제어하면 원활한 대화가 이어진다.
셋째로 정서적 욕구의 명시적 충족을 줄 필요도 있다. 연장자인 상대방이 반복적으로 같은 무용담을 꺼내는 핵심 이유는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적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말을 자르기보다 ‘그 시절에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하셨군요’라고 감정과 성취를 요약하여 명시적으로 인정해 주면 발언의 목적이 달성되어 이야기가 조기에 마무리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야기하는 당사자나 듣는 사람이나 원활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노인들이 나이 들어 가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하더라도 이를 어느 정도 갖추면 세대 갈등도 줄어들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고 발전적인 상하관계가 정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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