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회피하는 국가는 결국 더 큰 희생을 치른다.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문제전략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박수영 의원 SNS 포스팅
박수영 의원 SNS 포스팅

대한민국의 일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전선 위에 서있다. 그것은 바로 바다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산업을 움직이는 원유,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물류의 상당 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 해협이 흔들리는 순간 대한민국의 경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구조적 충격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 문제를 ‘남의 일’로 치부한다. “왜 우리가 중동까지 가야 하는가” “왜 우리 젊은이들을 그곳에 보내야 하는가?당신 아들이나 보내라”라는 말은 그 자체로 현실을 오인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정학적으로는 중동에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다. 우리의 유조선이 지나가고, 우리의 산업이 그 에너지에 의존한다면, 그곳은 이미 우리의 이해가 걸린 공간이다.

국제정치에서 바다는 중립적 공간이 아니다. 통제되는 공간이며, 누군가가 무력을 통해 안전을 보장하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질서를 사실상 미국 해군, 특히 미 7함대와 5함대의 힘에 의존해 누려왔다. 그러나 그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국가의 기본 기능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번영을 누리면서 그 기반이 되는 해상교통로(SLOC)의 안전을 타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는 전략적으로 자립한 국가가 아니다. 그것은 보호받는 경제체일 뿐이다.

호르무즈 파병 논란은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과연 자립적 국가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수차례 거론했지만 파병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위험을 수반한다.

그러나 미국과 산적해 있는 여러 가지 국가이익이 걸린 문제를 이 하나로 해결 가능하다. 미국을 방문하는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의 국가전략과 일본의 이익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 국가지도자는 저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파병 문제를 더욱 직시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다. 한국이 전작권을 단독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지휘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국가 방위의 모든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전작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과연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한반도 방위는 육군 중심의 사고에 의해 역할 분담해 왔다. 그러나 현대전에서 국가의 생존은 더 이상 국경선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의 생존은 병참선, 즉 SLOC(해상교통로)의 유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우주공간과 전자전도 중요한 면을 차지한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에너지 수송이 차단된다면, 그것은 곧 한국의 전쟁수행 능력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연료가 없는 군대는 존재하지 않으며, 에너지가 없는 국가는 전쟁 이전에 붕괴한다.

따라서 SLOC 보호는 선택적 임무가 아니라 전쟁 수행의 전제조건이다. 우리가 안보불감증이라고 걱정하지만 이 안보 불감증이 북한 김정은의 핵공갈이나 미사일 발사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것도 만성이 되었거나 불감증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막강한 주한미군이 있는 한 김정은이 도발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신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임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는 순간, 이 논리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지휘권은 우리가 갖고, 위험은 타국이 부담하는 구조는 존재할 수 없다.

결론은 하나다. 전작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은 한반도 방어뿐만 아니라, 자국의 해상교통로 보호까지 책임지는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전작권만 주장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공허한 구호다.

이제 남는 문제는 능력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한민국 해군은 그동안 연안 방어와 한반도 주변 해역 중심의 작전에 최적화되어 발전해 왔다. 그러나 SLOC 보호는 본질적으로 원양작전이며, 장기 지속 능력, 다층 방어체계, 기뢰 대응, 드론 대응, 호송작전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함정 몇 척의 문제가 아니라 작전개념 자체의 전환, 즉 ‘연안해군’에서 ‘대양(大洋)해군’으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대양해군을 외치면서도 정작 원양에서의 위험 부담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개념 없는 구호일 뿐이다. 바다를 지배할 의지가 없는 해군은 존재 의미를 잃는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회의 인식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희생 자체를 부정하려는 정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위험지역에 보내면 안 된다”는 말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위험을 완전히 회피하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 앞에서는 병사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해상교통로 보호라는 동일한 국가 생존 문제 앞에서는 갑자기 이를 거부한다. 더 나아가,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우리의 책임은 부정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으로 동맹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사고일 뿐이다. 역사는 명확히 말한다.

희생을 회피하는 국가는 결국 더 큰 희생을 치른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파병 찬반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책임있는 국가로 설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타국의 힘에 의존하는 국가로 남을 것인가를 가르는 문제다.

공짜 안보는 없다. 그리고 공짜 번영도 없다. 지도자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도 삼가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반드시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도 있다.

 


#호르무즈해협  #전작권 #대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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