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재건은 '과거'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한국 보수는 지금 깊은 혼수 상태에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선거 패배는 반복되었고, 신뢰는 무너졌으며, 세대는 이탈했다.

그럼에도 당 안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기억'에 기대어 결집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동안, 내부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체제는 '안정'을 선택했다. 내부 분열을 최소화하고 지지층을 다시 묶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이 곧 혁신은 아니다. 결집이 곧 재건은 아니다. 당권 교체는 있었지만 노선의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 관리의 리더십은 위기를 잠시 봉합할 수는 있어도,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봉합이 아니라 수술이다. 수술은 통증을 동반하지만,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최근 당내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윤어게인’ 흐름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과거 권력의 복원 가능성에 기대는 심리이며, 패배의 책임을 유보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보수 정치의 본령은 '책임'이다. 권력을 행사했다면 상응한 책임과 함께 성찰이 따라야 하고, 실패했다면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외부 환경과 상대의 전략만을 탓하는 순간, 보수의 철학은 공허해진다. 책임을 미루는 결집은 오래가지 않는다.  

‘윤어게인’은 전략적으로도 한계를 안고 있다. 수도권 확장 전략과 충돌하고, 중도층 회복을 어렵게 하며, 청년층의 정치적 거리감을 해소하지 못한다. 과거의 '상징'에 의존하는 메시지는 미래 세대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정치적 기억은 동원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장될 수 없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 증명해왔다. 1970년대 중반 침체에 빠졌던 영국 보수당은 단순한 내부 결속 강화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마거릿 대처는 복지국가 합의를 재검토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며 노동조합의 구조적 권력을 조정했다. 그것은 인물 교체가 아니라 철학의 재정립이었다.

1997년 총선에서 참패했을 때도 영국 보수당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환경 의제를 수용하고 세대 교체를 제도화하며 당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결집이 아니라 구조 전환이었다.

미국 공화당도 마찬가지였다. 워터게이트 이후 깊은 타격을 입은 뒤, 로널드 레이건을 통해 '작은 정부와 강한 국방'이라는 원칙을 재정립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또 다른 변곡점이었다. 당내 갈등은 거셌지만 사회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옳고 그름의 평가는 별개로, 스스로를 재편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통점은 하나다. 패배 이후 지지층 결집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학과 구조를 먼저 바꾸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보수에게 필요한 것도 그와 같은 자기 전환이다. 구호가 아니라 구조다.

공천 시스템부터 다시 짜야 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된 전략 공천과 계파 중심 공천은 당의 자율성과 책임 구조를 약화시켰다. 공천권은 분산되어야 한다.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공천관리기구를 두고, 외부 인사를 대폭 참여시키며, 청년과 여성 비율을 제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충성도가 아니라 경쟁력과 전문성이 기준이 되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보수는 인물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정책의 언어도 바뀌어야 한다. 야당의 역할은 반대를 외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안을 제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

자유를 말한다면 기회의 공정을 제도화해야 하고, 시장을 말한다면 청년의 자산 형성과 사회 이동성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안보를 말한다면 통합의 언어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청년 주거, 연금 개혁, 지역 균형 성장, 첨단 산업 전략에 대해 선제적이고 정교한 정책 플랫폼을 내놓지 못한다면, 중도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야당으로서의 전략 기능도 복원해야 한다. 정부를 감시하는 능력과 동시에 집권을 준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정당은 투쟁 집단으로 축소된다. 정책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전략 자원으로 만드는 상설 정책전략화위원회를 통해 청사진을 축적해야 한다. 선거 직전에 급조된 공약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세대 교체는 상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20·30세대는 정치적 충성보다 성과와 미래 비전을 본다. 과거로의 복귀는 설득력이 없다. 청년 비례대표 상위 배치의 제도화와 단계적 인재 육성 시스템 구축 없이는 세대 전환은 구호에 그칠 것이다.

보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안정과 결집으로 시간을 벌 것인가, 아니면 자기 부정을 통해 재건을 선택할 것인가. 해체는 파괴가 아니다. 재건의 전제다.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며 구조를 바꾸는 데서만 보수의 재출발은 가능하다.

보수의 재건은 '과거'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책임과 자유, 그리고 품격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갈 때만, 보수는 다시 설 수 있다. '과거의 이름'을 붙잡는 정당은 미래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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