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한 사람들은 와인을 조금씩 마신다는 말은 진실일까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인간 수명의 결정 요인 가운데 유전적 변수와 환경적 요소 중 어느 변수가 더 큰 영향을 미칠까?
현재까지는 환경적 요소가 조금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우세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 수명의 한계를 놓고 150세 vs 85세에 대한 끝없는 논쟁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기존 연구에서는 생활 습관이나 의료 접근성 등을 포함한 환경적 요소가 유전적 요소보다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가 잇따랐다. ‘네이처 메디신’에 환경적 요인이 수명 변동의 약 17%를 설명하는 반면, 유전적 요인은 2% 미만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지난 1월 발표된 연구 결과가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 결과는 오히려 유전적 요소가 수명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쪽이 더 많다.
‘사이언스’ 1월 29일 자에 게재된 ‘Heritability of intrinsic human life span is about 50% when confounding factors are addressed(교란 요인을 고려했을 때, 인간 수명의 본질적 유전율은 약 50%이다)’는 제목의 내용에 따르면, 수명은 다른 많은 유전적 형질과 마찬가지로 약 50% 정도 유전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전 연구와는 완전 상반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유전적 영향에 있어서도 훨씬 큰 폭으로 조정된 결과이다.
불과 얼마 전 쌍둥이 연구에서도 수명의 유전율은 20~25%에 불과하고, 대규모 가계 연구에서도 불과 6%밖에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통상 다양한 인구 집단에서 수명의 유전율은 15~33% 정도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추정치가 외인성 사망률, 즉 사고나 감염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사망에 의해 유전적 요인이 상당히 왜곡됐다고 밝히고 있다.
사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폭력이나 사고나 살인, 감염성 질환, 환경적 위험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외인성 사망, 그리고 유전적 돌연변이 또는 노화 관련 질병, 그리고 노화에 따른 생리 기능 저하 등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과정으로 인한 내인성 사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나르(Ben Shenhar) 등 연구진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스칸디나비아 쌍둥이 코호트에서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현재 추정되는 수명의 유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코호트가 태어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는 외적 원인이 사망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를 제외하면 수명은 다른 많은 형질과 마찬가지로 약 50% 정도 유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연구 결과, 외적 사망은 수명의 유전율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했고, 연구 대상의 최소 연령 제한은 이러한 추정치에 약간의 비선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외적 사망률을 고려했을 때, 내적 사망률로 인한 수명 유전율 추정치는 약 55%까지 증가하여 기존 추정치의 거의 두 배 이상을 보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높은 외적 사망률, 일관되지 않은 연령 기준, 복잡한 동종 교배 패턴을 가진 역사적 코호트를 포함했다. 다양한 지역과 시기의 개인을 포함함으로써 상당한 환경적 이질성이 발생하여 유전적 변이의 추정 비율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연구에서는 연령 기준과 외적 사망률을 보정한 후 스칸디나비아 쌍둥이 코호트에 초점을 맞춰 보다 동질적인 환경 조건에서 내재적 수명에 대한 유전적 기여도를 추정한 뒤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수정된 추정치를 사용하더라도 수명 변동의 절반 가량은 유전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머지 변동은 생활습관, 사회경제적 요인, 의료 접근성과 같은 환경적 영향이나 내재적 생물학적 확률성, 비가산 유전 효과 및 후성유전적 변형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네이처> 1월 27일 자에 게재된 ‘Still working at 107: Supercentenarian study probes genetics of extreme longevity(107세에도 여전히 일하고 있는...수펴센터내리안 연구가 초장수 유전학을 조사하다)’는 제목에서도 다양한 혈통을 가진 유전적 변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생 특별한 건강 식단이나 운동 습관조차 갖지 않은, 그리고 의료 서비스도 전혀 받지 못했던 100세 이상 160명의 노인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한 결과, 유전적 다양성이 그들의 장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연구마다 결론이 다르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몇 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장수의 목표치가 다르면 결과도 달리 나온다는 주장이다. ‘유전이 중요하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연구는 주로 초고령자를 대상으로 연구했을 때 그 나이까지 남아 있는 사람 자체가 이미 강하게 선별된 집단이라 유전적 보호 요인이나 회복력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기대수명이나 평균 수명을 연구했을 때는 감염병이나 심혈관, 암 조기 진단, 응급 의료 등 환경이나 의료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이를 초고령자만 대상으로 했을 때와는 완전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에서는 생활 습관이나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보편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연구 대상 혹은 표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생존자 편향(survivor bias)과 도시 농촌 고령자 비교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착시다. 초고령자 연구에서는 이미 사망한 사람들은 대상에서 이미 제외됐기 때문에 ‘장수자들은 특별한 식습관이나 운동을 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장수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 이를 ‘유전이 장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로 중간 변수에 대한 해석 없이 논리적으로 점프하는 결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인과추론의 함정으로도 설명한다. 장수한 사람들은 와인을 조금 마신다는 사례가 있을 때 이를 역으로 ‘적당한 음주가 장수에 도움된다’로 역인과로 해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장수한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와인을 조금 마실 수 있는데, 이때 와인은 원인 변수가 아니고 그냥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그런데 이를 마치 장수의 직접적 원인으로 해석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는 아니다.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건강, 소득, 사회적 관계, 교육수준, 식습관 등 다양하다.
또한 유전적 데이터는 통제돼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세히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식사량이나 운동량, 스트레스 같은 생활 습관은 보통 자체적으로 상당한 오차를 지닌다. 이러한 덜 정확한 환경 변수에 대한 자체 측정 오차를 지닌 채 유전 효과가 더 크다로 해석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무시하면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장수는 유전과 환경이 독립적으로 작용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특정 유전형에서만 특정 생활 습관이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어떤 유전형은 운동을 하면 혈당이나 지질이 크게 개선되고, 다른 유전형은 같은 운동에도 별 효과가 없다. 이 연구 결과를, 한 연구에서는 운동 효과가 크다로 다른 연구에서는 운동 효과가 미미하다로 도출될 수 있다. 이는 유전이나 환경보다 개입의 효과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장수 연구에서의 결과가 유전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연구 대상이 누구였는지, 어떠한 목표를 두고, 어떤 환경에서 조사를 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받아들여야 한다. 장수 연구에 대한 결과가 들쭉날쭉한 게 아니라 대상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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