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완성된 성인이 아닌, 미성숙한 청소년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공간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대학마다 학폭 전력의 학생들 일괄 불합격 처리가 발표되고 있다. '국민정서법'이 한국의 최고 상위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나만큼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고 나는 자부한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선생님들의 단체기합과 같은 집단주의적 폭력을 혐오했다. 나는 모든 폭력을 반대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 대학가에서 학교폭력(학폭) 이력을 입시에 엄격히 반영하여 '사실상 불합격' 처리하는 경향은 국민적 공분과 '정의 구현'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학들이 순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교육학적 관점과 주요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교육을 통한 교화'라는 학교의 본질적 기능보다는 '사회적 격리'와 '응보적 처벌'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1. 한국 vs 선진국의 입시 반영 방식 비교해보자.
한국 (2025~2026 대입) 대 주요 선진국 (미국, 유럽 등)
(1) 반영 방식: 한국 정량적 감점 및 지원을 차단. 징계 수위에 따라 점수를 깎거나 지원 자체를 제한함. 여타 선진국 정성적 평가 및 소명. 징계 기록을 기재하되, 학생이 어떻게 반성하고 변화했는지 '소명'할 기회를 부여함.
(2)철학: 한국은 응보적 정의 (Punitive)로 잘못에 상응하는 고통(불합격)을 주어 대가를 치르게 함. 여타 선진국 회복적 정의(Restorative).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변화 및 재사회화에 초점을 맞춤.
(3) 낙인 효과: 한국 어린 시절의 과오가 생애 결정적인 대입 통로를 영구적으로 봉쇄. 여타 선진국. 기회 제공, 심각한 중범죄가 아닌 이상, 진심 어린 반성과 개선 노력이 증명되면 재기의 기회를 줌.
2. 주요 선진국의 제도와 대응
* 미국의 "솔직한 소명과 변화를 중시"
미국 대학 공통 지원서인 Common App에는 과거 징계 기록을 묻는 항목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록이 있다고 해서 바로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명란을 통해 학생이 당시 사건에서 무엇을 배웠고, 이후 어떤 노력을 통해 성장했는지 서술하게 한다. 입학 사정관은 이 성숙의 과정'을 평가의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
* 유럽의 "교육적 처분과 개인정보 보호"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청소년기의 잘못을 입시에 직접적으로 연결해 '사회적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에 매우 신중하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선발'보다는 '자격'과 '재사회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징계 기록이 입시 기관에 무분별하게 제공되는 것을 인권 침해로 간주하기도 하며, 학교 내부에서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3. 한국식 '무관용 원칙'
(1) 교육적 기능의 상실: "낙인이 교육을 이기는 사회"
학교는 완성된 성인이 아닌, 미성숙한 청소년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공간이다. 하지만 '학폭 기록 = 대입 실패'라는 공식이 고착화되면, 학교 현장은 교육적 지도보다는 기록 삭제를 위한 법적 분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가해 학생은 진심 어린 사과 대신 변호사를 선임해 기록을 지우는 데 몰두하게 되고, 이는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 비례의 원칙과 이중 처벌 논란
이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통해 봉사활동, 전학 등 행정적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대입 불합격이라는 추가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이 하나의 잘못에 대해 두 번 벌하는 것이 아니냐는 법적·윤리적 문제를 외면한다. 특히 경미한 사안(1~3호 조치)조차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치명타가 된다는 전체주의적 사회의 모습이다.
(3) 사회적 계급화와 사각지대
부유한 환경의 학생들은 법적 대응을 통해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지울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기록이 그대로 남아 평생의 굴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집안에 능력이 있으면 전과를 갖고 해외 유학을 보내 고등 교육의 기회를 가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집안의 자식은 영원한 저주의 굴레에서 살 것이다. 또한,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시기의 폭력이나 정식 신고되지 않은 사안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이 끝난다"는 공포 기반의 제도는 청소년들의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고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최근 카이스트도 입시에서 모든 학폭 전력자들을 불합격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 은퇴한 나는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실수하지 않는 인간들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인가? 청소년 시절 한때 실수로 사회적 추방을 하는 성리학적 봉건주의 질서가 한심하다.
btlee@kaist.ac.kr
#학폭무관용 #교육의역할 #청소년재기의기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