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전기 만들 수 있나? ... 이대통령이 원전 인정한 이유?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AI와 빅데이터 센터가 산업의 심장이 되고, 전기차가 일상이 된 시대에 전력은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정책 수단이 아니다.
전력은 국가의 생존 조건이며 산업 경쟁력의 바닥이다. 여기에 이상 고온과 극단적 폭염이 겹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현실의 위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 정책이 뒤집히는 나라에서 누가 장기 투자를 하겠는가. 원전은 5년짜리 정책이 아니다. 50년을 보고 설계하고, 60년을 운영하며, 그 사이 국가의 산업 구조를 지탱하는 인프라다.
그런데 한국은 이 거대한 시스템을 정권의 구호에 따라 “켰다 껐다” 해왔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정책 신뢰가 무너지고, 산업은 불안해지고, 국민은 전기요금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원전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환영할 만한 변화다. 여야를 떠나, 원전 문제를 진영의 깃발로만 다루던 한국 정치에서 국가의 미래라는 관점으로 균형을 찾으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특히 탈원전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지지층의 정서를 뒤로하고, 국가를 살리는 방향으로 실용적 결단을 내렸다면 그것은 평가받아야 한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의 이념형 탈원전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정책은 발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말은 시작일 뿐이고, 실행 계획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정은 다시 흔들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의 발언에 이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공식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 권고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로드맵으로 못 박아야 한다. 다시 말해,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면 그 다음은 행동이다. 대통령이 직접 방향을 제시하고, 에너지환경부 장관 김성환이 실행으로 옮기게 해야 한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인사 구도다. 산업부 장관은 상대적으로 원전 활용에 우호적인 인물로 읽히는 반면, 에너지환경부 장관으로는 대표적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을 앉혔다. 얼핏 보면 의외다.
그러나 이 조합은 대통령이 균형을 택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다만 균형이 결단을 미루는 장치가 되면 국가가 손해를 본다. 균형은 조율을 위한 구조이지, 책임을 분산시키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최근 국무회의에서 1차 ‘교시’ 이후 김성환 장관의 입장이 바뀌는 듯하다가 오락가락했고, 다시 2차 ‘교시’를 통해 확실하게 정리되는 흐름이 있었다. 이 과정 자체가 지금 한국 에너지 정책의 현실을 보여준다. 원전이 과학과 데이터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하다. 대통령이 원전은 필요하다고 말한 순간부터, 장관은 행정으로 옮기는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은 원전 수명을 60년, 나아가 80년까지 연장하는 체제로 들어갔다. 유럽도 현실 앞에서 방향을 바꿨다. 프랑스는 원전을 국가 전력의 축으로 유지하며 신규 건설을 결정했다. 일본은 후쿠시마를 겪고도 원전 정책을 수정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도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간다. 즉, 선진국의 공통된 결론은 재생에너지 확대 + 원전 유지(또는 확대)다.
한국만 거꾸로 갈 수는 없다. AI와 데이터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력을 소모한다.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나가 중소 도시 하나의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시대다. 이 전력을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책이 아니라 희망사항에 가깝다. 기술이 아니라 물리의 문제다. 전력은 구호가 아니라 공급으로 증명된다.
더 아이러니한 현실도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원전 수출국이다. 해외에서는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앞세워 수주 경쟁을 벌이면서, 국내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원전을 흔든다. 밖에서는 한국 원전은 믿을 만하다고 말하면서, 안에서는 한국 원전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모순이 반복된다. 이중 메시지는 결국 국가 신뢰를 갉아먹는다.
전기요금은 기업의 원가이고, 원가는 곧 국가 경쟁력이다. 제련, 철강, 화학 같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서 전력 비용은 제조원가의 핵심 변수다. 전기요금이 흔들리면 공장은 흔들리고, 공장이 흔들리면 일자리가 흔들린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위기는 단순한 요금 문제가 아니다. 산업 기반의 이탈이라는 구조적 위기다.
그럼에도 원전을 줄이면서 국민에게 아껴 쓰라고 말하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다. 전기요금 인상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국민과 기업에게 고통 분담만 요구하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원전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원자력은 국가 생존의 기술 기반이며, 동시에 전략 자산이다. 북한이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절대 자산으로 삼는 현실에서, 원자력 기술은 평시에는 전력 인프라이고 유사시에는 국가의 전략적 선택지를 지키는 기반이다. 이것은 핵무장 논쟁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억제력의 핵심은 선언이 아니라 잠재력이며, 잠재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원전 필요성을 인정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다. 정책을 발언에서 계획으로 바꾸는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신규 원전 로드맵, 계속운전의 과학적 기준 확립, 산업 전력 수요에 대한 장기 전망, 그리고 국민에게 설명 가능한 비용 구조까지—이 모든 것이 한 묶음으로 제시돼야 한다.
원전 정책은 더 이상 진영의 깃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념으로 전기를 만들 수는 없다. 정치는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치는 전기를 끊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국민과 산업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원전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조건이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실행이다. 전력은 이념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생존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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