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약칭이 정치 기사 제목을 점령한 이 풍경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가 무너지고 있다. 수사의 이름이 정치의 언어를 집어삼키고, 의혹이 정책을 대체하며,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말하는 일은 이제 용기가 아니라 자기기만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한 사람의 언어로 말한다.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만든 출발점이며, 동시에 나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변명이다.
검찰 반부패수사부, 특검, 경찰 국수본, 공수처 등 이름만 나열해도 현란하다. 수사기관의 약칭이 정치 기사 제목을 점령한 이 풍경은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까지 후퇴했는지를 보여주는 후진적 자화상이다.
정치의 언어는 사라지고 수사의 언어가 공론장을 지배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필연적으로 붕괴된다. 수사가 정치를 대신하는 사회에서 정치는 3류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고발이며, 정책이 아니라 압수수색이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수사 개시 여부가 정치적 생사를 가르고, 기소 가능성이 여론의 판결을 대신한다. 선거보다 수사가 앞서고, 유권자의 판단보다 검찰과 그 판단을 실시간 중계하는 언론의 해석이 먼저 작동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숨 쉴 수 없다.
조선이 사화로 망했다면, 지금의 한국은 그 위험한 닮은 꼴을 향해 가고 있다. 사화의 본질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제도와 논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숙청과 처벌로 대체했던 구조적 실패였다.
오늘의 한국 역시 정책 경쟁 대신 수사 착수와 기소 여부가 정치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정치가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할 때, 국가는 법치의 외형만 남긴 채 공포의 통치로 기울게 된다.
수사공화국이 지속될 때 무너지는 것은 특정 정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그 자체다. 정치는 장기 비전을 잃고 단기 방어에 매몰되며, 관료는 책임 대신 눈치를 배우고, 시민은 판단 대신 진영 감정에 의존하게 된다. 제도는 하루아침에 붕괴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기능을 상실한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다른 길을 선택해 왔다. 미국은 법무부 산하 94개 연방지방검찰청이 기소와 공소유지에 집중하고, 법무부 외청인 연방수사국이 수사를 담당한다. 권한은 분산되어 있고, 견제는 제도화되어 있다.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의회와 선거, 그리고 정책 경쟁에 있다. 수사는 사후적이고 제한적이며,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 역시 검찰은 강력하지만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영국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스캔들이 발생해도 정치적 책임이 먼저 작동하고, 수사는 조용히 뒤따른다. 정치의 무게 중심은 끝까지 정치에 남아 있다.
이 판단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젊은 시절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미국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대학교수와 외교관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강의실과 외교 현장에서 보았고,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다양한 민주국가들과 협력하며 그들의 공론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보았다. 그 경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오늘의 한국 정치는 분명 선진 민주주의의 궤도에서 이탈해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필자는 한 번쯤 나 자신에게도 솔직해지고 싶다. 만약 젊은 날 정치가의 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밟는 익숙한 경로를 따라 정치학과를 나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으니, 제도는 제도로 작동하고 정치가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미국에서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밀리언셀러 대학생을 위한 거로 영어시리즈[전10권]의 저자로서 청년 시절에 조기 은퇴하지 않았다면, 정치의 소음과는 거리를 둔 성공한 청년 창업가로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젊은 날의 필자는 지나치게 애국심이 충만했고, 어쩌면 순진할 만큼 민족주의자였다. 한국에서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은 그렇게 내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만들었다. 떠날 수 있었던 길을 스스로 닫고, 굳이 가장 거칠고 소모적인 길을 선택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늘 현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계산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복잡하다. 수사가 정치의 전면을 점령하고, 피의 사실이 재판 이전에 여론의 판결을 받으며, 언론이 감시자가 아니라 분노의 중계자 역할에 머무는 사회에서 시민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감정의 소비자로 전락한다.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가 함께 3류로 추락하는 이 풍경 속에서,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나라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 역시 나는 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요구한다. 수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는 책임으로 응답해야 한다. 언론은 고발장이 아니라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시민은 분노가 아니라 판단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수사의 언어가 정치를 대체하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없다. 수사는 정치의 대안이 아니고, 기소는 민심을 대신할 수 없고, 압수수색은 정책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사가 전면에 서는 순간 정치는 사라지고 국가는 흔들린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이 이런 전형적인 후진형 독재국가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적 책임은 선거로 묻고, 형사 책임은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질서다. 이 단순한 원칙이 무너질 때 국가는 법치의 외형만 남긴 채 실질은 공포정치로 전락한다. 수사기관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고, 언론이 그 확성기가 되며, 시민이 분노의 소비자로 전락하는 사회는 더 이상 민주국가라 부를 수 없다.
필자는 요구한다. 수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는 책임으로 응답해야 한다. 언론은 고발장의 중계자가 아니라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시민은 분노가 아니라 판단으로 참여해야 한다.
검찰 반부패수사부, 특검, 경찰 국수본, 공수처의 이름이 정치 기사 제목을 장식하는 이 비정상적 풍경은 이제 끝나야 한다. 정치의 실패를 수사로 봉합하려는 유혹, 선거의 결과를 기소로 뒤집으려는 발상, 정책 경쟁 대신 의혹 생산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분명히 말한다. 필자는 이 나라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침묵하지 않겠다. 외면하지 않겠다. 기록하고 말하고 요구하겠다. 그것이 떠나지 못한 사람에게 남겨진 마지막 책임이기 때문이다.
수사공화국 대한민국은 선택이 아니라 실패다. 그리고 실패는 교정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다음은 더 없다.
정치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책임은 책임으로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시 시민의 손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떠나지 못한 사람의 언어로 다시 한 번 기록한다. 이것은 탄식이 아니라 요구이며, 회한이 아니라 선언이다. 이 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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