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을 탐한 적이 없지만, 한국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때 대신 결정해온 것은 사실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CNN 화면 캡처
CNN 화면 캡처

마두로 체포는 미국의 전후 중남미 개입과 쿠바 사태, 파나마의 노리에가 압송이라는 기억을 소환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미국 패권주의의 폭주라 규정한다.

그러나 미국의 행동을 도덕이나 위선의 언어로만 해석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친다.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오래된 원리, '먼로주의'로 수렴된다.

내가 1980년대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전후 미국 외교사를 따라가던 시절, 특히 중남미 개입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하나의 분명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쿠바, 파나마, 니카라과, 과테말라, 그리고 오늘의 베네수엘라까지—사건은 달랐지만 미국의 판단 기준은 놀라울 만큼 일관돼 있었다.

미국은 중남미를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아니라 전략적 질서의 공간으로 인식해 왔고, 그 질서를 흔드는 요소에 대해서는 주권국가 여부와 무관하게 개입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미국은 도덕국가가 아니라 '질서국가'이며, 그 질서의 이름이 바로 '먼로주의'라는 사실이다.

먼로주의는 흔히 '고립주의'로 오해된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이해다.

먼로주의는 유럽 열강의 서반구 개입을 거부하는 선언인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이 관리하는 질서 공간으로 설정한 경고였다. 유럽 문제에는 불간섭, 그러나 서반구 질서에는 적극 개입한다는 이 이중 구조는 200년 넘게 유지돼 왔고, 단 한 번도 폐기된 적이 없다.

이 원리는 냉전기에도, 탈냉전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은 소련의 서반구 진입을 군사력으로 차단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주권국가의 지도자였지만 미국은 체포해 자국으로 압송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역시 같은 범주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가 승인한 현직 대통령임에도, 미국은 그를 합법적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체포와 압송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해 왔다.

국제법의 언어로 보면 명백한 주권 침해지만, 미국은 이 사안을 국제법의 틀 안에서 다루지 않는다. 베네수엘라는 주권국가이기 이전에 서반구 질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예외가 아니라 '본질'이다. 트럼프는 마두로 문제를 다루면서 민주주의나 인권이라는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안보와 미국의 이익만을 반복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트럼프 개인의 난폭함이나 초법적 일탈로 해석하지만, 이는 착각에 가깝다. 트럼프는 미국 외교의 오래된 본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면서도 더 세련된 언어로 포장했을 뿐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더 위험한 것이 아니라 더 솔직하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안을 단순히 에너지 확보의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 역시 본질을 비켜간다. 물론 석유와 에너지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앞서 이란을 압박하고, 이번에는 베네수엘라를 정조준한 흐름을 관통하는 핵심은 서반구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미국이 지키려는 것은 특정 유전이 아니라, 그 자원이 중국의 전략적 발판으로 기능하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질서 관리 의지다. 에너지는 이유라기보다 수단에 가깝다.

유럽의 침묵 역시 위선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강하게 비판하면서, 미국의 서반구 개입에는 말을 아끼는 이유는 분명하다. 강대국들은 서로의 안마당에 대해 넘지 않는 선을 공유한다. 20세기 초 한반도와 필리핀을 두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보여준 암묵적 합의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안마당이며, 유럽은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이제 이 논리를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중국은 북한을 완전히 접수할 수 있는가. 답은 분명히 아니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구조의 문제다.

중국이 5천 년 동안 변방 국가를 다뤄온 방식은 직접 흡수가 아니었다. 조공은 있었으나 지속적인 직접 통치나 완전 편입은 선택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반도를 중국의 일부로 만들기보다, 완충지대로 유지하며 전략적 위성으로 활용해 왔다.

중국의 변방 관리 방식은 흔히 오해된다. 조공 체제를 착취 구조로 이해하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 조공 무역은 일방적 수탈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조선이 명·청에 사대의 예를 갖추고 조공을 바쳤지만, 그 대가로 받은 하사품과 무역 이익 역시 상당했다. 조공 무역은 조선 정부 재정의 약 10%에 달하는 수입원이기도 했다. 조공은 굴종의 상징이 아니라, 중국이 변방을 평화롭게 관리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질서였다.

바로 이 점에서 중국은 변방을 삼켜서 지배하기보다, 흡수하지 않고 안정시키는 방식을 택해 왔다. 한반도는 그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 역시 중국의 일부가 되기보다는, 중국의 전략적 계산 속에서 관리되는 완충지로 존재하고 있다.

대만은 전혀 다르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중국 역사 속 통치 경험, 민족과 문명의 연속성은 대만을 중국 내전의 연장선에 놓이게 한다. 그래서 중국–대만 문제는 국제 분쟁이면서 동시에 미완의 내전이다. 이 틀을 중국–한반도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순간, 분석은 무너진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을 접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도 답은 명확하다. 절대로 아니다. 조선 말기 신미양요에서 미국은 군사행동을 하고도 철수했고, 해방 이후에도 병합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에서도 영토화를 배제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단 한 번도 정착형 제국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미국의 제국적 지배 방식은 영토 확장이나 직접 통치가 아니라, 영향력 행사를 통한 간접 통치였다. 미국은 식민지를 넓히기보다 군사력, 경제력, 제도, 가치, 동맹 체계를 통해 타국의 선택과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즉, 국경을 바꾸지 않고도 질서·규칙·결정 구조를 장악하는 제국이 미국의 본질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땅을 소유하지 않고 방향을 지배하는 제국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을 접수하지 않지만, 한국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경우 대신 결정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사례가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는 주권국가였지만, 국가 운영 능력을 상실하자 주권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 한국의 위태로움은 결정권의 상실 가능성에 있다. 친미냐 반미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믿느냐 의심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핵심은 자율적 결정 능력이다. 외교, 안보, 경제의 핵심 사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세계는 다시 강대국이 각자의 안마당을 관리하는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 이 질서는 불편하지만 현실이다. 이를 도덕으로 비난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하고 대비할 때만 국가의 선택지는 남는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미국은 한국을 탐한 적이 없지만, 한국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때 대신 결정해온 것은 사실이다.

먼로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작동하는 세계 질서의 한 축이다. 이 질서 속에서 한국의 생존 조건은 분명하다. 누구의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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