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결코 자신의 문장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최보식의언론=김요셉 기독교한국 대표(평택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전문성이라 숭상받던 것들의 실체는 정보 비대칭성에 기댄 지식 중개업에 불과했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정보의 위치를 선점한 이들에게 부여된 배타적 직함이었고, 그들의 핵심 역량은 해외의 담론을 수입하고 번역하여 가공하는 기술적 숙련도에 있었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 기술적 전문성의 허울을 완전히 벗겨내고 있다.
지금껏 소위 전문가들은 외신과 학술지라는 성벽 뒤에서 정보를 먼저 읽고 요약해 전달하는 정보 수입상의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었다. 언어의 장벽과 정보 접근의 격차가 그들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거대 언어모델(LLM)은 전 세계의 1차 자료를 실시간으로 교차 검증하며 한국적 맥락으로 재구성해낼 수 있다. 정보의 수집과 가공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이미 AI라는 압도적인 상위 호환 서비스를 이길 수 없다.
진짜 위기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철학의 부재에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식과 맥락은 늘어놓지만, 정작 이것은 무엇인가, 왜 그런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 즉 본질과 근거, 방법 앞에서는 무력했다는 것. 그들은 객관과 중립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설명은 장황하나 기준은 없고, 분석은 정교했지만 결론은 비겁했다. “이것은 옳지 않다” 혹은 “우리는 이 길로 가야 한다”라는 한 문장의 선언을 아끼는 사이, 그들의 글은 AI가 출력하는 찬반 양론 요약 보고서와 아무런 차별점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철학이 없는 전문가는 길을 잃은 안내자와 같다. AI 시대에 전문가의 가치는 남이 모르는 정보를 얼마나 아는가가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 위에서 어떤 철학적 기준으로 선을 긋느냐에서 결정된다.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 가치를 꿰뚫어 보아야 하고, 시대적 소명과 공동체의 윤리에 비추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AI는 결코 자신의 문장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철학을 근거로 내린 판단에 대해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진다. 불의를 불의라 규정하고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수하겠다고 나설 때, 비로소 가짜 전문성과 진짜 전문성은 갈라지는 것이다.
지식 중개인과 정보 수입상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타자수나 필경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이제 남은 자리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가진 자, 즉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자"들에게만 허락될 것이다. 철학적 기준 세우기를 포기한 전문가는 지식의 홍수속에서 가장 먼저 도태될 유물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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