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한국을 관통하는 ‘전력망의 역설’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한국처럼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내리는데 전기 요금은 치솟는 현상의 원인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과 내수 인프라 시장'의 차이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은 국제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현재 국제 석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다.
미국은 셰일 오일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었다. 펌프에서 퍼올리는 양이 많으니 가격이 내려간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제가 예전 같지 않아 석유 소비가 줄었다. 비록 속도는 조절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 비중이 줄어들며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를 억제하고 있다.
반면, 전기 요금은 발전 원료비(가스, 석탄 등)보다 전기를 실어 나르는 설비 비용이 가격 결정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전력망(Grid)은 대부분 1960~1970년대에 지어져 수명이 다했다. 이를 현대화하고 교체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며, 이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 요금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재생 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송전 비용을 늘린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해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전기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를 더 짓고 전선을 더 깔아야 하는 상황이다.
캘리포니아의 산불 사태나 텍사스의 한파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전력 회사들이 산불 방지를 위해 전선을 땅에 묻거나(지중화), 설비를 보강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는 연료비는 '0'이지만, 초기 건설 비용과 이 불안정한 전력을 기존 전력망에 연결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전력 회사들은 이러한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당분간 요금을 계속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처럼 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리면 휘발유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더라도 전기 요금 상승세는 앞으로 수년(2030년대 초반까지)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btl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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