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성덕을 찬양한 최후 진술은 그렇게 교과서와 기념문에서 사라졌다.
[최보식의언론=정광제 이승만학당 이사]

서울역 광장에는 2011년 왈우(曰遇) 강우규 의사 의거 92주년 기념식에서 맞춰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한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이 세워졌다 (편집자)
3.1운동이 일어난 뒤인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 앞마당에서 수류탄이 폭발했다. 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해군 대장 사이토 마코토(斎藤実)을 맞이하기 위해 인파가 몰린 자리였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폭발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도 모른 채 흩어졌다.
이 사건의 범인은 평안남도 덕천 출신의 노인 강우규(姜宇奎)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예순다섯이었다. 그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부임 소식을 듣고 폭탄 투척을 계획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가 의도한 것과 달랐다. 사이토는 단 한 점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대신 경성부 혼마치 경찰서 서장 고무타 쥬타로가 사망했고,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를 포함한 총독부 고위 관리 여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목표는 빗나갔고, 피해는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강우규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11월 29일,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여기까지의 사실관계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설명했는가에 있다.
강우규는 재판과 심문 과정에서 폭탄의 위력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안전핀을 뽑아 던지라는 말만 들었을 뿐, 폭탄이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무기인 줄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뾰족한 것이 튀어나와 목표로 삼은 한 사람만 맞히는 줄 알았다고도 진술했다.
정치적 결단을 감행한 사람의 항변이라기보다는, 책임을 줄이려는 피고인의 변명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대목은 그의 최후 진술이다. 그 내용은 동아일보 1920년 4월 16일자 기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판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강우규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일본 천황의 성덕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 세계가 평화로 나아가던 시기에 일본 천황이 인도와 정의로 신민을 대하고, 동양 평화를 위해 힘쓰라는 칙명을 내린 것을 읽고 깊이 감동했다는 이야기였다.
강우규는 그 성덕에 감읍했다고까지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이 이 사건의 성격을 완전히 드러낸다. 강우규는 자신이 사이토 총독을 죽이려 한 이유가, 그가 조선을 지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천황의 뜻을 거역한 역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이토는 동양 평화를 깨뜨리고 인도와 성의를 무시한 자이며, 황명을 어긴 자이므로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는 논리였다.
사이토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황명을 거역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설명의 방향이었다.
강우규의 세계관에서 일본 천황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었고, 도덕적 최고 권위였다. 문제는 제국 그 자체가 아니라, 제국 내부에서 천황의 뜻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관리였다.
이 논리는 독립운동의 논리와 완전히 다르다. 제국을 전복하거나 식민 지배 질서를 부정하려는 인식은 그의 진술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천황의 뜻을 대신 실행하려 한 존재로 자신을 규정했다.
반일이나 반제국이 아니라, 명백한 천황주의적 사고였다. 그가 던진 폭탄은 제국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제국 내부의 충성 경쟁 속에서 나온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규는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로 정리되었다.
1965년, 박정희 정부 시절 그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이 시기 다수의 인물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서사 속에 편입되었다. 개별 인물의 사상이나 발언, 세계관의 일관성은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항일'이라는 큰 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불편한 기록은 삭제되거나 침묵 속에 묻혔다.
천황의 성덕을 찬양한 최후 진술은 그렇게 교과서와 기념문에서 사라졌다.
강우규를 어떻게 기억해 왔는가를 따져보고 싶다. 그의 말과 기록을 그대로 놓고 보면, ‘독립투사’라는 명칭은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덜어내야 했고, 불편한 문장은 지워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은 역사를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를 가린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관리되어 왔다. 서울역 강우규의 동상 앞을 지날 때마다 맘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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